조연의 맛

버섯 크림스프를 만들며…

by 청일

조연의 맛



송이버섯과 느타리버섯을 씻어 분쇄기에 곱게 간다.

웍에 옮겨 담아 천천히 볶으며 수분을 날린다.

물을 부어 다시 끓이고, 후추와 간장으로 간을 맞춘 뒤

우유와 생크림을 더해 한 번 더 시간을 들인다.

마지막으로 치즈를 넣고 끓여내면,

입안에서 잘게 씹히는 고소한 버섯 크림스프가 완성된다.


긴 시간 이어진 일련의 과정을 지나 완성된 이 스프는

내일 찾아올 손님들에게 내어질 것이다.

겉으로 보기엔 버섯과 우유, 크림만으로 만들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또 다른 재료들이 섞여 있다.

형체도, 이름도 쉽게 드러나지 않는 재료들.

누구도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짚어내기 어렵지만

분명히 스프의 맛을 완성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 한 그릇의 스프 안에도 주연과 조연이 있다.

주연은 분명하지만,

조연은 흔적을 지우고 녹아들어 전체를 살린다.

보이지 않기에 더 깊고,

드러나지 않기에 더 오래 남는다.


오늘 스프를 만들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형체는 사라졌지만 분명 존재했던

그 조연들의 역할을 기억해내고 싶다고.

세상은 결국 조연 없이는

주연도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후추 한 꼬집이 없었다면 이 스프는 밋밋했을 것이다.

간장 몇 방울이 빠졌더라면 깊이는 사라졌을 것이다.

그것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누구도 한 숟가락을 뜨고

“아, 후추의 맛이군요”라고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이 없었다면

이 맛은 결코 완성되지 못했을 것이다.


표 나지 않아도, 이름이 불리지 않아도 자기 몫을 다해 자리를 지키는 것들. 어쩌면 내가 그들을 오래 붙들고 싶은 이유는 내 삶에서도 그런 시간들이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주연이 아니었던 날들이 결국 하루를 완성했고, 앞에 서지 않았던 시간이 나를 여기까지 데려왔다.


누군가의 곁에서 말을 아끼고 누군가의 이야기가 흘러가도록 자리를 내주고 빛이 향하는 방향에서 한 걸음 물러나 있던 순간들. 그 시간들은 사라지지 않고 형태를 바꿔 남아 있다.


내일 손님들이 이 스프를 한 숟가락 뜰 때 그들은 버섯의 고소함과 크림의 부드러움을 먼저 느낄 것이다. 하지만 진짜 맛을 만든 건 그 뒤에 숨은 것들이다. 보이지 않는 것들의 조화.

이름 없는 것들의 헌신.

조연들의 침묵.

조연으로 살아온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진실은

세상의 모든 맛은 조연이 만든다는 사실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