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사진
나무도 때로는 허물을 벗는다.
지난여름의 맹렬했던 열기를 뒤로한 채, 영하의 칼바람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나무는 조용히 낡은 옷을 내려놓는다.
카메라의 뷰파인더를 통해 나무껍질을 세밀히 들여다보던 순간, 나는 ‘벗겨짐’이라는 행위가 지닌 엄숙한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거칠게 일어난 껍질의 층위마다 지난 계절의 풍파가 화석처럼 새겨져 있었고, 벌어진 틈새로 비치는 속살은 애처로울 만큼 여리면서도 동시에 지독히 단단해 보였다. 나무는 안으로는 세월의 나이테를 켜켜이 쌓고, 밖으로는 다가올 새봄을 맞이하기 위해 남루해진 외투를 과감히 벗어던지고 있었다.
우리는 흔히 무언가를 벗어버리는 일을 상실이나 소멸로 치부한다. 그러나 자연의 문법은 다르다. 버림은 끝이 아니라 비상(飛上)을 위한 전제다. 나무가 껍질을 벗는 것은 생명력이 다해서가 아니라, 더 견고한 자신으로 거듭나기 위한 치열한 몸부림이다.
대지가 동면의 심연으로 가라앉고, 뿌리가 묵묵히 때를 기다리는 계절. 겉으로 보기에 생명의 기운조차 말라버린 듯한 이 황량한 겨울에, 나무는 침묵 속에서 비대해진 겉옷을 한 겹씩 덜어낸다. 가지 끝마다 봄의 전령이 될 새싹의 씨앗을 태아처럼 조심스레 품은 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깊은 잠에 든다.
셔터를 누르는 손끝에 나무의 떨림이 전해지는 듯했다. 허물 벗겨진 메마른 몸에 다시 수액이 차오르고 생명이 약동하는 계절이 오면, 이 나무는 새살이 돋듯 매끄러운 속살을 드러내며 봄의 한복판에 서 있을 것이다. 저 고요한 기다림 속에 얼마나 거대한 폭발력이 숨어 있는지, 뷰파인더 너머의 나는 숨을 죽이고 지켜볼 뿐이다.
겨울나무도, 우리네 삶도 결국 같은 궤적을 그린다. 봄을 기다리며 각자의 혹독한 한겨울을 묵묵히 견뎌내는 것. 때로는 과감한 탈피가 필요하다. 너무 오래 입어 무거워진 관습들, 이제는 나를 보호하기보다 억누르고 있는 낡은 생각들.
시린 겨울 끝에 반드시 당도할 봄을,
그 봄과 함께 다시 차오를 우리 안의 뜨거운 생명을.
나는 기다리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