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전시장을 둘러보고
오전 8시가 되자 어김없이 강아지들이 낑낑대기 시작한다. 배꼽기계는 장확한가보다 이시간이면 밥달라며 낑낑대다가 반응이 없으면 발로 내팔을 긁기 시작한다.
밥을 달라며 낑낑대는 강아지들의 성화에 못 이겨 화식(火食)으로 차린 아침을 내어준다.
그릇까지 삼킬 듯 단숨에 비워내는 녀석들을 보며, 그동안 맛도없는 건조한 사료만 주었던 미안함이 마음 한구석에 남는다.
생명에게 따뜻한 한 끼를 먹이는 일로 나의 하루도 시작된다.
전시회로 향하는 지하철 안.
이어폰을 타고 세르게이 크로마노프의 〈Gypsy Passion〉이 흐른다.
가녀린 바이올린 선율이 심장을 파고들고, 투명한 피아노 음색이 그 애절함을 덧댄다.
집시의 삶을 다 알지는 못하지만, 음악 속에 흐르는 특유의 애잔함은 낯선 이방인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전시장 입구에서 ‘카드 전용’이라는 문구 앞에 잠시 멈춰 선다.
현금 만 원권조차 무용지물이 되는 순간,
우리가 가치 있다고 믿어온 종이 한 장의 허망함을 새삼 실감한다.
겨우 들어선 조각전은 회화와는 또 다른 감각을 깨워주었다.
창작자의 상상력은 캔버스라는 사각의 틀을 벗어나
공간을 자유롭게 유영하고 있었다.
유독 시선이 머문 작품은 ‘자(尺)’의 형상을 한 작품이었다.
기준을 상징하는 도구임에도 눈금의 간격은 제각각이었다.
그 비논리적인 눈금 앞에서
세상에 정답은 없으며, 오직 각자의 해답만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게된다.
물리적이고 수학적인 기준은 명확할지 몰라도
우리네 인생에는 그런 자가 꼭 필요하지는 않다.
내가 풀고, 내가 꾸려가야 할 나만의 길이 있을 뿐이다.
수학적이지 않은 그 거리의 단위를 바라보며
‘저게 바로 인생이지’ 하고 혼잣말을 삼킨다.
또 다른 작품 속에는
가늘고 위태로운 사다리가 하늘을 향해 뻗어 있다.
그 끝에 앉아 손을 뻗는 인물의 표정에서
바벨탑처럼 끝없는 인간의 욕망이 읽힌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다시 손을 뻗어 닿으려하는 저 끝에 뭐가 있을지 알 수 없지만 나는 그저 가만히 서서 저 높은곳을 응시하고 싶다
황금을 잔뜩 지고도 불만이 가득한 그 얼굴은 심통이 가득찼다.
마음이 평화롭지 않으면
세상 그 무엇으로도 충분할 수 없음을 말해주는듯하다.
이 작품 앞에서
15년의 직장 생활에 마침표를 찍던 날의 기억이 되살아난다.
나뭇가지를 놓는 순간 천 길 낭떠러지로 추락할 줄 알았는데,
사실 지상은 이미 내 발밑에 와 있었다는 그 깨달음.
나는 그 말에 용기를 얻어 비로소 손을 놓을 수 있었다.
관광지가 되어버린 별마당 도서관의 번잡함을 지나
집으로 돌아오는 길,
오늘 마주한 무수한 프레임들을 되새겨본다.
억지로 오르지 않아도 되는 사다리가 있고,
굳이 재지 않아도 되는 거리도 있다는 사실을
이제는 안다.
나는 지금도 가끔 높은 곳을 올려다본다.
하지만 이제는
내가 딛고 서 있는 이 단단한 바닥을
더 자주 확인하며 살아가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