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스키아 전시회를 보고

캔버스위의 절규

by 청일

미루고 미루다 겨울의 절정에서야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로 향했다. 차가운 바람을 뚫고 홀로 걷는 길은 왠지 모를 을씨년스러움을 자아냈지만, 전시장 안은 평일임에도 바스키아라는 거칠고도 섬세한 영혼을 마주하려는 관객들로 붐볐다. 나는 나직하게 흐르는 해설에 의지해, 한 작품 한 작품을 눈에 담으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곳에는 아프리카계 흑인이라는 지울 수 없는 낙인을 피부에 각인한 채 살다 간 한 젊은 예술가의 정체성이 직관적으로 드러나 있었다. 가면과 해골, 상형문자 같은 도식, 그리고 외계인을 연상시키는 기괴한 신체 묘사는 그만의 독특한 언어가 되어 회화의 새로운 장르를 구축하고 있었다.


그의 캔버스에는 사회적 상처와 저항의 흔적이 깊게 패어 있었다. 흑인으로 살아가며 온몸으로 체감해야 했던 불평등, 사회적 약자의 위치에서 느꼈던 분노와 좌절을 그는 예술이라는 용광로에 넣어 승화시켰다. 인종의 벽을 허물고자 했던 간절한 몸부림을 마주할 때면, 그가 감내했을 아픔에 대한 연민이 자연스레 뒤따랐다.


특히 나를 오래 멈춰 세운 작품은 Farina(1984)였다. 흰 캔버스 위, 강렬한 흑인 셰프의 형상이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본래 미국의 시리얼 광고 속에서 늘 환하게 웃으며 순종적인 하인의 모습으로 소비되던 캐릭터 ‘라스투스’. 바스키아는 이 익숙한 스테레오타입을 단숨에 뒤집어 놓았다.

그는 시리얼 그릇을 신발로 바꾸고, 그 위에 ‘수리(REPAIRS)’와 ‘재건(REBUILDING)’이라는 단어를 새겨 넣었다. 분리된 눈과 불길처럼 튀어나온 혀, 그리고 반복되는 저작권 기호는 흑인의 몸과 이미지가 얼마나 쉽게 소유되고 거래되어 왔는지를 날카롭게 폭로한다. 하지만 그는 고발에서 멈추지 않았다. 셰프의 모자를 번개의 신 ‘상고’의 뿔로 승화시키며, 희화화되었던 존재를 존엄과 힘을 가진 신화적 존재로 다시 세웠다.”


“현대미술에 흑인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흑인을 주인공으로 쓴다. 내가 흑인이기 때문이다.”


이어폰 너머로 들려오는 배우 박보검의 차분한 음성은 바스키아의 선언에 깊이를 더했다. 그것은 가식적인 웃음 뒤에 가려진 차별의 가죽을 거칠게 찢어내고, 훼손된 존엄을 기어이 되찾아주려는 예술가의 처절한 몸부림이자 강렬한 외침이었다.


전시장을 나서는 길, 차가운 겨울 공기가 뺨을 스쳤다. 문득 한 예술가의 뜨거운 열망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여전히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서글픈 자각이 들었다. 그가 그토록 염원했던 세상은 아직 도래하지 않았고, 어쩌면 그것은 영원히 평행선을 달릴 냉혹한 현실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예술가의 고독한 외침이 수십 년의 세월을 건너 이 시린 계절에 수많은 이의 마음을 울렸다는 사실만으로도 그의 예술은 충분히 고결하다. 세상의 거대한 흐름을 단숨에 바꿀 순 없을지라도, 그 뜨거웠던 진심은 누군가의 내면에 지워지지 않는 무늬로 남을 것이다.


변화는 더디고 미미할지언정, 그가 캔버스에 심어놓은 불꽃은 누군가의 마음속에서 오래도록 꺼지지 않고 흐를 것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