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근
1. 작가 소개
박수근(1914–1965)은 한국 근현대미술을 대표하는 화가로, 소박한 서민의 일상을 화폭에 담아낸 인물이다. 거친 화강암 질감을 연상시키는 독특한 마티에르와 절제된 색채를 통해 한국적 정서를 구축했다. 시장, 아낙네, 아이들, 빨래터 같은 소재를 즐겨 다루며, 화려함보다 삶의 본질과 인간의 선함을 표현하는 데 집중했다. 그의 작품은 전쟁과 가난의 시대를 배경으로 하지만, 그 안에서 묵묵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존엄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다.
2. 작품 설명
’ 나무와 두 여인‘은 화면 중앙에 크게 자리한 나무와 그 아래에 서 있는 두 여인을 단순한 구도로 배치한 작품이다. 인물들은 화려한 표정이나 동작 없이 정적으로 서 있으며, 화면 전체는 낮은 채도의 색과 거친 질감으로 채워져 있다. 나무는 가지를 넓게 펼친 채 화면을 지탱하는 축처럼 서 있고, 두 여인은 그 아래에서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며 일상의 한 장면을 형성한다.
이 작품에서 나무는 단순한 배경을 넘어 삶의 시간을 상징하는 존재로 읽힌다. 굳건히 서 있는 나무와 대비되는 여인들의 소박한 모습은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보여준다. 인물의 세부 묘사는 최소화되어 있지만, 두터운 질감과 단단한 윤곽선은 인물의 존재감을 강조한다. 전체적으로 작품은 고단한 현실을 과장 없이 담담하게 표현하면서도, 그 안에 깃든 삶의 지속성과 인간적 따뜻함을 은은하게 드러낸다.
3. 나의 감상
삶의 결을 다시 바라보다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같은 그림도 전혀 다른 생의 얼굴을 드러낸다. 언젠가 나는 박수근의 ‘나무와 두 여인’을 보며 감상문을 쓴 적이 있다. 그때는 박완서의 나목을 읽고 난 직후였을 것이다. 잎 하나 없이 앙상한 가지를 드러낸 고목과, 그 아래를 묵묵히 지나는 여인들의 모습에서 나는 오직 ‘인내’만을 읽었다. 아이를 업고 머리에 짐을 인 형상은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감내해야 했던 모진 세월과 척박한 가난의 무게로 다가왔다.
그러나 오늘은 이우환 화백의 글을 곁에 두고 다시 그림을 마주한다. 아들에게 “쌀 씻는 일이 매번 새롭다”라고 말하던 그의 어머니 이야기를 떠올리자, 캔버스의 거친 질감 사이로 뜻밖의 빛나는 조각들이 스며 나온다. 가난이 공기처럼 당연하던 시절, 자식을 먹이고 입히는 일은 뼈를 깎는 노동을 전제로 가능한 일이었다. 그 안에는 분명 자식의 입으로 들어가는 밥 한 술에 차오르던 충만함이 있었을 것이다.
박수근이 여러 번 덧칠해 완성한 투박한 마티에르는 어쩌면 우리 어머니들이 매일같이 반복했던 쌀 씻기와 빨래질이 겹겹이 쌓여 만들어진 ‘삶의 굳은살’ 인지도 모르겠다. 거칠고 단단한 표면 아래에는 생을 포기하지 않은 온기가 흐른다.
내 어머니의 시간도 그러했다. 자식 넷을 키우며 짊어졌을 삶의 무게는 분명 가벼울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햇볕 좋은 날이면 어머니는 “오늘은 빨래 널기 좋은 날이다” 하시며 마당으로 나서셨다. 툭툭 털어 너는 광목천에서 번지던 물 비린내와 햇살 냄새. 어린 나는 그 평화로운 감각이 좋아 어머니 곁을 맴돌며 그 모습을 오래 바라보았다.
화려한 콧노래는 없었지만, 젖은 빨래를 펴는 손길은 정성스러웠고 햇살을 머금은 얼굴에는 은은한 미소가 번져 있었다. 그것은 고된 노동을 생의 찬미로 바꾸는 조용한 의식이었다. 이제 그림 속 여인들의 발걸음은 더 이상 외로워 보이지 않는다. 각자의 자리에서 삶이라는 예술을 묵묵히 일구어 가는 단단한 걸음으로 읽힌다.
삶은 늘 비극도 아니고 희극도 아니다. 그 사이 어딘가에서 우리는 울고 웃으며 하루를 건넌다. 잎을 떨군 나무가 죽은 것이 아니라 봄을 준비하듯, 고단한 일상 속에서도 우리는 저마다의 노래를 품고 내일로 나아간다.
나는 오늘 아침 박수근의 그림 한 점으로 내일의 그 행렬에 동참하며 나의 결로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