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루
"앞모습은 세상을 향한 표정이지만,
뒷모습은 삶을 향한 정직한 고백이다.
굽은 어깨 위에 내려앉은 별빛을 읽다."
박성우 시인의 시 ‘또 하루‘를 읽다가 마지막 시구에서 한참을 멈춰 섰다.
‘사람은 뒷모습이 아름다워야 한다’는 문장이 마음의 벽에 오래도록 잔상을 남겼다.
나 역시 늘 그렇게 생각해 왔기 때문이었을까. 그 문장을 읽는 순간, 마음 깊은 곳에 저장해 두었던 사진 한 장이 불쑥 떠올랐다.
언젠가 김창열 화백의 전시에서 보았던 그의 뒷모습이다. 나는 그 등 앞에 못 박힌 듯 서 있었다. 그때는 막연한 이끌림이라 여겼지만, 이제야 알 것 같다. 내가 마주한 것은 한 예술가의 외형이 아니라, 그가 묵묵히 견뎌온 시간의 결정체였다는 것을.
얼굴에는 세월의 흔적이 선명히 남는다. 우리는 표정과 주름으로 한 사람을 쉽게 단정 짓곤 한다. 그러나 뒷모습은 다르다. 그곳에는 어떤 변명도 꾸밈도 없다. 다만 삶을 정직하게 통과해온 무게가 어깨 위에 고요히 내려앉아 있을 뿐이다. 조금은 굽은 등, 다소 처진 어깨. 그 안에는 고독과 외로움이 스며 있겠지만, 동시에 끝내 버티고 건너온 날들이 말없는 증언이 되어 흐르고 있었다.
어쩌면 우리는 뒷모습으로 한 사람을 더 깊이 읽어내는지도 모른다. 앞모습에서 미처 드러나지 않던 진심이, 그가 돌아선 자리에서 비로소 투명해지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가 평생을 바쳐 그려온 물방울의 투명함을 닮아 있었다.
육체의 윤기는 바래고 힘은 빠졌을지언정, 그의 두 어깨 위에는 맑은 영혼의 청아함이 빛나고 있었다. 그 빛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아마도 평생 한결같이 자신의 길을 걷어온 사람에게만 허락되는 훈장 같은 것이리라. 고단한 삶이었을지라도, 하고 싶은 일을 끝까지 붙들고 살아낸 이의 마음속에는 영롱한 별 하나가 깃드는 법이다. 밤하늘의 별처럼, 혹은 캔버스 위를 구르는 맑은 물방울처럼 그의 어깨 위에 내려앉은 그 반짝임을 나는 잊을 수 없다.
나는 아직 그 깊이를 다 헤아리지 못한다. 그러나 시 한 구절이 다시금 나를 갈증 나게 했다.
언젠가 나 또한 누군가의 기억 속에 오래 머무는 아름다운 뒷모습으로 남을 수 있기를. 내가 떠난 자리가 따뜻하고, 돌아선 어깨 위에 은은한 별빛 하나 머무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