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오르막이 준 선물
어제의 피로는 극한에 달해 있었다. 수많은 산길과 가파른 오르막, 살결을 파고드는 비바람과 갑작스러운 우박까지 온몸으로 받아내며 달린 대가였다. 아침에 일어나 거울을 보니 눈꺼풀부터 뺨까지 온통 퉁퉁 부어 있었다. 하지만 이 붓기 또한 치열했던 어제의 훈장이라 생각하니 그리 염려할 일은 아니었다. 시간이 흐르면 가라앉을 붓기처럼, 고통 또한 결국 지나갈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호텔 조식을 마치고 다시 안장에 올랐다. 비 예보는 없었지만 낮게 깔린 바람과 영상 8도의 기온은 제법 서늘하게 옷깃을 파고들었다. 본격적인 여정에 앞서 근처 카페에 들러 모닝커피를 주문했다. 드립 커피는 물론 아메리카노 역시 남다른 풍미를 자랑하는 곳이었다. 주인장과 짧은 인연을 기념하며 사진도 한 장 남겼다.
여객터미널에서 이곳까지 자전거로 왔다고 하자 그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다시 남쪽 끝 마을로 향한다는 말을 건네자 믿을 수 없다는 듯 혀를 내둘렀다. 그 경탄 섞인 표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다시 페달을 밟고 오르막을 마주하고서야 온몸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목적지로 향하는 길은 끝없는 경사의 연속이었다. 기어를 끝까지 낮추어도 바퀴는 무거웠고, 결국 자전거에서 내려 걷기를 반복했다. 라이딩인지 트레킹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 고행이었다. 그렇게 한 걸음씩 밀어 올린 ‘끌바’의 거리만도 무려 6킬로미터.
하지만 고통의 정점을 찍고 고개를 넘어서는 순간, 마법 같은 반전이 시작되었다.
고생 끝에 오른 길 끝에는 끝없는 내리막이 선물처럼 기다리고 있었다. 계기판으로만 무려 8킬로미터에 달하는 완만한 내리막길이었다. 페달을 밟지 않아도 자전거는 쏜살같이 미끄러져 내려갔다.
그 길을 따라 내려오자 공기의 질감이 달라졌다. 높은 산이 만들어낸 기막힌 기후의 경계선 너머로 완연한 봄이 기다리고 있었다. 길가에는 노란 유채꽃이 물결치고, 차갑던 바람은 어느새 훈훈한 온기를 머금고 있었다.
대마도의 남쪽 끝마을에는 목련이 활짝 피어 있었다. 자전거를 타고 골목골목을 누볐다. 노인들의 정겨운 수다가 흐르고, 집집마다 정성껏 가꾼 작은 꽃들이 아담한 마을에 온기를 더했다. 하늘에서는 솔개가 큰 날개를 펴고 유유히 활공했고, 마당의 햇볕 아래에서는 고양이들이 느긋하게 오수를 즐기고 있었다. 그야말로 평화의 정점이었다.
마을을 뒤로하고 버스에 올라 다시 호텔로 향했다. 돌아오는 길, 버스에 몸을 실으니 우리가 힘겹게 올랐던 그 길들이 차창 밖으로 단 35분 만에 스쳐 지나갔다.. 저 오르막을 포기없이 걸어 올라왔다는 사실에
허망함보다는 묘한 뿌듯함이 밀려왔다
대마도의 북쪽 끝에서 남쪽 끝까지, 3일간의 종주는 그렇게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누군가 왜 그런 무모하고 고단한 일을 하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답하고 싶다.
“두 바퀴 위에서 자신의 숨소리에 귀 기울이며 한계를 넘어본 사람만이 맛볼 수 있는 ‘극한의 기쁨’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