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 흙으로 돌아가는 사유

헤세의 정원 갤러리

by 청일



봄이다.

세상은 꽃으로 만개하고, 시선이 닿는 곳마다 울긋불긋 꽃대궐이다. 불현듯 찬 공기는 자취를 감추고 훈풍이 스며들더니, 어느새 봄은 내 눈앞에 바짝 다가와 있었다. 갑작스레 찾아온 계절과 예고 없이 터진 꽃들로, 일상은 놀라움의 연속이 된다. 겨울을 견뎌낸 빈 가지마다 옅은 연두색 잎들이 움트고, 그 앙증맞은 아우성이 그저 사랑스럽기만 하다.


봄 햇살을 가득 안고 ‘헤세의 정원’으로 향했다. 그곳 지하에 다소곳이 자리한 갤러리에는 이완 작가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밖의 떠들썩한 봄과는 대조적으로, 그곳에는 차분히 가라앉은 흙빛의 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소란스러운 꽃무늬 대신, 낮게 스며드는 대지의 색이 묘한 안정감을 건넸다.


이 계절, 모든 나무가 새잎과 꽃을 뿜어내느라 분주하지만, 결국 그 화려함을 가능케 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곳에 뻗어 있는 뿌리다. 뿌리는 대지에 기대어 영양을 길어 올리고, 그 생명은 다시 지상으로 솟구친다.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곧 흙으로 돌아가는 일일 터. 흙은 모든 순환의 출발점이자 종착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였을까. 이 흙빛 그림 앞에서 느낀 평온함은, 자연의 본질을 몸이 먼저 알아본 반응이었을지도 모른다.


만개한 봄날, 모두가 꽃의 얼굴을 바라볼 때 나는 그 근원을 이 그림 속에서 발견한다. 땅에 발을 딛고, 고요 속에서 묵묵히 생을 이어가는 존재들. 그 평화로운 장면은 어쩌면 자연에서의 적막을 갈망했던 작가의 소망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시선은 고스란히 나에게로 이어져, 이 눈부신 봄날에 대지의 근원을 다시 떠올리게 만든다.


오늘 나는, 묵묵히 흙의 기운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자연의 위대함을 고요한 그림 한 점 앞에서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