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하우스 미술관 관람
양평 서종면 문호리, 그곳에 구하우스가 있다.
언젠가 꼭 한 번 가보리라 마음먹었으나 차일피일 미뤄두었던, 숙제 같은 곳.
봄기운이 막 기지개를 켜는 어느 날, 나는 비로소 그 아담한 입구 앞에 섰다.
담벼락 너머로 개나리는 노란 물감을 풀어놓았고, 겨울을 견뎌낸 나뭇가지 끝에는 연녹색 이파리들이 수줍게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북한강의 물줄기를 따라 달려온 길 끝에서 마주한 미술관은, 마치 누군가의 정성 어린 서재처럼 한적한 골목 속에 고요히 숨 쉬고 있었다.
어떤 전시가 열리는지도 모른 채 발걸음을 옮겼지만, 오히려 그 무지(無知)는 기분 좋은 설렘이 되었다.
전시실은 1층과 2층이 촘촘하게 엮여 있었다.
서도호, 백남준, 데이비드 호크니, 제임스 터렐까지.
공간마다 새겨진 이름들을 따라가다 보니, 규모를 압도하는 수집가의 안목 앞에서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별관에 마련된 제임스 터렐의 공간은 그 자체로 하나의 ‘완성된 우주’였다.
정적을 깨는 음악과 함께 빛의 변주가 시작되었다. 작년 전시에서는 렌즈에 담지 못해 아쉬움이 컸던 그 빛의 풍경을, 오늘은 오롯이 눈과 마음, 그리고 카메라의 프레임 속에 담아낼 수 있었다.
나는 한동안 그 빛의 파도 앞에 멈춰 섰다.
그곳은 경계가 무너진 세계였다.
초점을 흐린 눈동자 위로 색채들이 유영하고, 흑과 백의 명확함 대신 수만 가지의 계조가 서로를 보듬으며 스며들었다.
하루의 시작과 끝에 칼날 같은 경계가 없듯, 한 달과 일 년의 매듭 또한 모호하듯,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역시 이토록 부드럽게 흐르며 변해왔다는 것을.
선명한 경계가 없기에 우리는 서로 섞이고, 변화하며, 타인의 색을 닮아간다.
세상은 흑백의 논리가 아니라, 무수한 색의 공존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빛의 전언이 조용히 마음을 두드렸다.
변하지 않는 듯하면서도 끊임없이 일렁이는 그 흐름을 바라보고 있자니, 나라는 존재마저 거대한 빛의 소용돌이 속으로 천천히 스며드는 기분이었다.
본관으로 돌아와, 내 시선을 가장 오래 붙잡은 것은 서도호의 작품, ‘뒤얽힌 사람’이었다.
작품 앞에서 나는 ‘인연’의 실체를 목격했다.
무수한 실타래가 나라는 중심을 향해 뻗어 있었고, 수만 가지의 인연이 나를 향해 밀려오고 있었다.
돌아보니 지난 세월, 내가 맺어온 인연들이 하나둘 모여 지금의 나라는 형상을 빚어냈다. 어떤 이는 나를 성장시켰고, 어떤 이는 묵묵히 곁을 지켰으며, 또 어떤 이는 삶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조용히 떠나갔다.
나는 결코 홀로 존재하지 않았다.
색색의 사연을 품은 인연의 실타래들이 촘촘히 얽히고설켜, 비로소 나의 삶을 지탱해온 것이다.
그 얽힘의 중심에서 나는 늘 서 있었다.
때로는 거센 소용돌이의 한복판에, 때로는 태풍의 눈 같은 고요 속에.
앞으로도 나는 관계라는 거대한 그물망 위에서 세상을 바라보며, 그 촘촘한 인연의 결을 호흡하듯 느끼며 살아갈 것이다.
예상치 못한 만남은 결국 나를 다시 돌아보게 했다.
미술관 마당에 피어난 이름 모를 작은 꽃을 바라본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때를 알고 묵묵히 자신을 가꾸어 피어나는 존재.
나 또한 그러하고 싶다.
제임스 터렐이 보여준 빛의 유연함처럼,
서도호가 보여준 인연의 깊이처럼.
나는 세월과 관계라는 토양 위에서 스스로를 꽃피우는 한 송이 꽃으로 남고 싶다.
60년의 한 주기를 지나 다시 시작되는 나의 ‘두 번째 계절’ 또한,
그렇게 은은한 향기를 머금기를 조용히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