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B 김창완전시회
중학교 시절이었던 것 같다. 산울림의 ‘나 어떡해’를 탐닉하던 때가.
그 시절 내게 노래는 완벽한 위로였고, 순수한 기쁨이었다. 형이 사다 놓은 LP판이 닳도록 반복해 들으며, 나는 그들의 분절된 선율 속에 깊이 잠겨 지냈다.
노래는 참 묘하다. 시간은 가차 없이 흘러가는데, 노래는 늘 그 자리에 머문다.
그날의 공기와 습도, 찰나의 감정과 서툴던 나 자신까지 고스란히 붙잡아 둔 채, 변하지 않는 얼굴로 우리를 기다린다. 마치 상하지 않는 '기억의 방부제'처럼, 오래된 추억의 방 한구석에서 여전히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것이다.
오늘, 그 노래의 중심에 있던 사람, 김창완의 그림 전시를 마주했다.
브라운관 속 익숙한 배우의 모습이 아니라, 내게는 여전히 영원한 ‘뮤지션’으로 각인된 그의 또 다른 얼굴이었다. 노래와 그림은 서로 다른 언어를 구사하는 예술이라지만, 그의 노랫말을 시각화한다면 필시 이런 형상이 아닐까 싶었다.
화면 속 자화상은 지독히 단순했다.
거칠고 꾸밈없는 붓질, 일부러 비껴간 듯 삐뚤어진 눈과 입. 어딘가 서툴고 투박해서 오히려 더 솔직해 보이는 얼굴. 그 해맑은 무심함을 바라보는 순간, 그의 노래 ‘개구쟁이’가 귓가를 스쳤다.
일흔을 넘긴 노년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자화상은 늙지 않았다.
오히려 세월의 풍파를 교묘히 비껴간 듯, 영락없는 어린아이의 표정으로 남겨져 있었다. 몸은 속절없이 시간을 통과해 왔으나, 그의 마음만은 여전히 그 시절 어느 골목 끝에 머물러 있는 듯했다.
사회적 품위와 기품을 한 꺼풀 내려놓은 자리. 그 무방비한 지점에서 드러나는 것은 어쩌면 가장 본질적인 ‘나’의 원형일지도 모른다.
그림 앞에 서서 문득 생각에 잠겼다. 저 개구쟁이 같은 얼굴은 비단 그의 모습일 뿐만 아니라, 어른이라는 이름 아래 내가 차마 잃어버리고 싶지 않았던 ‘어린 날의 나’가 아니었을까.
노래가 기억을 붙잡아 두듯, 그의 그림은 흩어진 마음을 되돌려 놓고 있었다.
나는 한동안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한 채,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그 시절의 소년과 조용히 마주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