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 서화관에서
서직수의 초상이 평상복 차림으로 다소곳하게, 그러나 곧게 서 있다. 검은 저고리 허리끈과 검은 상투 관모, 그리고 정갈한 하얀 덧버선까지. 그는 이 그림 속에 자신의 모든 겉모습을 온전히 내어놓은 듯 보인다.
당대 최고의 화원이었던 김홍도와 이명기의 신묘한 붓질로도, 서직수의 깊은 내면과 인품까지는 온전히 담아내지 못했음을 안타까워 했다니 그의 기품이 어떠했을지 짐작이 간다. 나는 서직수의 얼굴과 의복 너머, 그가 차마 다 담아내지 못한 내면의 풍경을 조용히 들여다보려 애써본다. 한 점의 그림으로 남은 옛 선인의 기품을 어찌 후대의 시선으로 다 헤아릴 수 있을까.
우리는 타인의 시선이 닿는 얼굴을 가꾸고, 멋진 옷을 입으며 '보여지는 나'를 위해 무수한 노력을 기울인다. 그러나 정작 내 안의 나를 가꾸는 일에는 얼마나 정성을 들이고 있는가.
삶이 바쁘고 고단해서, 그저 하루를 살아내는 데 급급해서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쩌면 우리는 내면을 가꾸는 법 자체를 아예 잊어버린 것은 아닐까.
나 역시 지난 세월 동안 '살아내는 일'에만 몰두해왔다. 내면을 돌보는 일에 마음이 미치기에는 세상의 속도가 너무 빨랐다. 일이 우선이었고, 그 일의 요구에 맞추어 나를 끊임없이 훈련시키고 단련시키며 살아온 날들이었다.
육십갑자의 삶을 한 바퀴 돌아, 시간으로부터 조금은 해방된 지금에야 비로소 나를 마주한다. 지나온 인생의 길목마다 굴곡이 지고 주름이 깊어졌지만, 이제는 한 걸음 물러선 시선으로 나라는 사람을 가만히 응시해 본다. 이제는 하고 싶지 않은 일은 멀리하고, 마음이 가는 일을 곁에 두며 후회 없는 삶의 여백을 차분히 채워가고 싶다.
모든 날이 주말이 된 삶은 사실 생각만큼 설레지만은 않았다. 간절히 기다리던 주말과 연휴도 이제는 일상의 배경이 되어 특별한 의미를 잃었다. 하지만 나는 이 단조로움을 선물로 바꾸기로 했다. 하루하루가 나를 새롭게 빚어낼 수 있는 기회라는 생각으로, 오늘도 내가 몰두하고 싶은 일에 마음을 쏟는다.
얼굴에는 은은한 기품이 흐르고, 몸은 단단하되 흐트러짐이 없는 사람. 단순히 나이만 먹은 노인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기여할 수 있는 ‘유용한 어른’으로 남고 싶다.
나는 오늘도 이 선물 같은 하루를 기회 삼아, 보이지 않는 나의 내면을 조용히 다듬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