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아들의 첫 집으로 배달될 어느 눈부신 기억에 대하여
살아가다 보면, 평생을 지탱하는 단 하나의 장면을 만나게 된다.
오늘이 바로 내게 그런 날이었다.
난생처음 ‘저자’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책을 내놓고, 축하의 온기가 가득한 출간 기념행사를 치른 날. 그러나 그 모든 성취를 넘어, 나는 작가로서의 탄생보다 더 값진 무언가를 받아 들었다. 그것은 숫자로 환산할 수 없는, 인생의 가장 깊은 곳에서 건네받은 다정한 성적표였다.
가장 먼저 나를 울컥하게 한 것은 ‘영원한 옆지기’라는 문구가 적힌 꽃바구니였다. 결혼 35년 만에 아내에게 처음 받아보는 꽃선물. 예상치 못한 그 향기가 코끝을 지나 가슴 깊은 곳까지 번져왔다. 무심한 듯 흘러온 세월 속에서도 한결같이 내 곁을 지켜준 사람. 그 정적이고도 단단한 응원은 그 어떤 화려한 수식어보다 묵직하게 내 마음을 두드렸다.
뒤이어 바쁜 일상을 제쳐두고 달려온 아들 내외의 기습 방문까지 이어지자, 나는 그저 그 자리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벅찬 행복의 한가운데서 정신없이 웃고 있는 나를 보며 한 지인이 말했다.
“재윤 샘, 정말 성공한 인생을 사셨군요.”
그 말에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회적 성취가 아무리 드높다 한들,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 인정받지 못한 삶을 과연 성공이라 부를 수 있을까. 그 순간, 내 삶을 지탱해온 기준이 기분 좋게 선명해졌다.
행사의 백미는 아들 내외가 한 점의 그림을 고르고, 그 감상을 글로 나누는 시간이었다. 며느리가 고른 그림 속에는 삶의 고단함과 목표를 향한 치열한 시간이 투명하게 투영되어 있었다. 담담히 읽어 내려가는 문장 사이로 묻어나는 삶의 무게. 시아버지인 나는 대견함과 함께 설명하기 어려운 먹먹함을 느꼈다. 잘 살아내고 있다는 안도와, 그만큼의 무게를 홀로 짊어지고 있었을 안타까움이 동시에 밀려왔다.
놀랍게도 아들이 선택한 그림 역시 아내의 것과 같았다. 부부는 닮는다는 말처럼, 같은 곳을 바라보는 두 사람의 마음이 참으로 기특하고 귀했다. 하지만 아들은 첫 문장을 떼기도 전에 목이 메었다.
군 복무 시절, 동고동락했던 군견을 떠나보내며 가슴 깊이 새겨진 그리움이 그림을 매개로 터져 나온 것이다. 결국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보이는 아들의 모습에, 옆에 계시던 선생님이 웃으며 말씀하셨다.
“정확히 아빠의 성향을 고스란히 물려받았네요!”
나는 그 맑은 눈물 속에서 나를 보았다. 섬세하고 여린 마음, 쉽게 드러내지 못하지만 깊이 간직해온 뜨거운 감정들. 그 모든 것이 나를 닮아 있다는 사실이 이상하리만큼 따스하게 다가왔다. 그 아이가 내 아들이라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그리고 사무치게 사랑스러웠다.
오는 5월, 아들 내외는 생애 첫 보금자리로 이사를 한다. 나는 그들이 마음을 모아 고른 그 그림을 입주 선물로 주기로 마음먹었다. 작가가 된 날, 나는 동시에 생애 처음으로 소중한 작품을 선택하는 ‘컬렉터’가 되었다. 이 그림은 이제 아들의 집 한편에 걸려, 우리가 함께 울고 웃었던 오늘의 기억을 오래도록 붙잡아 줄 것이다.
꽃바구니의 은은한 향기, 아들의 맑은 눈물, 그리고 서로를 향해 건네던 무조건적인 응원들.
작가로서 첫발을 내디딘 오늘,
내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작품은 오늘 출간된 이 책이 아니라, 지금까지 가족과 함께 써 내려온 ‘사랑’이라는 이름의 시간이었음을.
이 기분 좋은 떨림이 이제 막 자신들만의 보금자리를 시작하는 아들 내외의 일상 속으로, 축복처럼 번져가기를 두 손 모아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