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렘이 쌓여 책이 되기까지

경계를 허무는 예술의 힘

by 청일



짧지 않은 세월을 살아오며 수많은 매듭을 지어왔다고 생각했지만, ‘출간 기념회’라는 생소한 이름의 오프닝은 낯선 떨림으로 다가왔다. 익숙한 삶의 궤도에서 벗어나 처음 마주한 시작. 그 문턱에서 나를 가장 먼저 반긴 감정은 다름 아닌 ‘설렘’이었다.


오전 11시, 정성스레 준비한 다과와 함께 축하객들을 맞이할 채비를 마쳤다. 이번 행사는 예교리 과정의 동료 저자 스물세 명이 함께 마음을 모은 자리였다. 혼자가 아닌 여럿이기에 긴장은 나뉘었고, 기쁨은 배가되었다. 서로의 소회를 나누는 목소리 사이로 기분 좋은 들뜸이 공기처럼 번져갔다.


따뜻한 박수 속에 전시된 책과 그림들이 공간을 채우기 시작했을 때, 예상치 못한 풍경이 펼쳐졌다. 그날의 공간은 단순히 책을 보여주는 자리에 머물지 않았다. 관객들은 감상자의 자리에 머물기를 거부하고, 작가들의 세계 안으로 기꺼이 걸어 들어왔다. 벽에 걸린 글과 그림에 영감을 받은 이들이 자발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며 또 하나의 전시를 완성해 나갔다.


작가와 관람객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찰나. 그것은 그 어떤 연출된 행사에서도 보기 힘든 ‘살아 있는 퍼포먼스’였다. 우리가 처음 예술의 세계에 발을 들였을 때 느꼈던 그 순수한 경외감이 전시장 전체로 번져나갔다. “나도 써보고 싶다”는 짧은 고백들이 모여, 하나의 문장이 또 다른 문장을 불러일으키는 경이로운 연쇄를 만들어냈다.


돌이켜보면 이 모든 순간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예술과는 거리를 두고 살던 내가 한 사람과의 만남을 계기로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되었고, 그동안 차곡차곡 쌓아온 ‘예술 향유’의 시간들이 응축되어 오늘의 장면으로 피어났다. 그림을 통해 나를 발견하고, 그 안의 감정들을 길어 올려 글로 옮기던 수많은 시간들이 마침내 한 권의 책으로 완성된 것이다.


작가로서 무대에 서서 축하를 받는 경험은 한낮의 꿈처럼 아득하면서도 짜릿했다. 하지만 행사가 끝난 지금, 내 안에 남아 있는 것은 화려한 조명이 아니라 다시 연필을 쥐게 하는 고요한 힘이다.


이제 나는 또 다른 기대를 품는다. 예술을 향유하고 글을 써 내려가는 이 길 위에서, 앞으로 어떤 문장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삶의 무게만큼 쌓인 경험들이 예술이라는 체를 거쳐 세상에 나올 때, 그 문장들은 누군가의 마음에 붙어 다시 살아 움직일 것이다.


오늘도 나는 그 기분 좋은 설렘을 안고, 다시 한 줄의 문장을 써 내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