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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파스빈 Aug 22. 2024

악몽과도 같은 기억

이제는 안전이다.


2024년 6월 8일

기억에서 지우고 싶은 악몽과도 같은 그날의 기억을

다시 더듬어 이렇게 글을 쓰는 이유가 있다.

다시는 다치지 않고 안전하게 라이딩을 하기위한

다짐이자 새로 데려올 트라이폴드에 대한 약속이기도하다.


4월에 국토종주를 무사히 마치고 함께한 일행들은

의기충천해 있었고 다음 챌린지로 동해안 일주를 곧바로 계획하게 되었다.

그리고 6월 7일 두대의 차에 자전거를 싣고 바닷길을 힘차게 달려 나갈 부푼 꿈을 안고 동해안 영덕을 향해 달려갔다.

드디어 첫 출발지에 도착해서 자전거를 다시 세팅하고 2박 3일 여정의 스타트를 끊었다.


타고 온 차는 대리기사를 통해 최종 목적지인 고성으로 보내놓고 우리 일행은 행복에 찬 라이딩을 시작했다.

첫 구간부터 오르막구간이라 힘겹게 헉헉 거리며 페달링을 해야만 했다. 제주도 환상길이나  국토종주 구간처럼 잘 만들어진 자전거길이 아닌 거의 대부분 공도를 이용하는 길이었기에 옆엔 언제나 지나가는 차량으로 인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하지만 평지를 달리는 길은 동해안의 짙푸른 바다와 함께 하는 길이어서 국토종주와는 또다른 분위기로 즐길 수 있었다.

낙타등으로 표현되는 일주길은 오르내림을 반복하는 힘겨운 길이었지만 다들 고통을 즐기는 사람들인 양 웃으며 첫날의 라이딩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둘째 날은 첫날 보다 더 힘든 낙타등의 연속이었다.

가도 가도 끝이 안 보이는 오르막을 오르고 또 올라갔다.

끌바에 대한 유혹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안장을 사수하며 정상까지 페달링을 하고 나니 기진맥진이었다.

잠깐의 휴식을 취하고 출발해 보니 굽이굽이 내리막이 펼쳐지고 있었다. 지난 국토종주 때 다운힐에서 64킬로 속도로 달려보았던 경험이 있었던지라 나도 모르게 속도에 대한 욕심이 생겨났다.

다운힐을 바람을 가르며 쏜갈같이 내려가면서 핸들에 달린 속도계를 보니 69.3킬로라는 숫자가 눈에 들어왔다.

좀만 더 속력이 붙으면 70킬로 찍겠구나 하며 기대에 차있었다.그러고는 고개를 들어 전방을 보니 갑자기 노란 차량 방지턱이 내 눈에 들어왔다.  

순간적으로 이제 죽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속도로 방지턱을 넘으면 자전거는 공중부양을 해서 어디로 떨어질지 모르는 상황이라 일단 감속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브레이크를 급하게 잡으니 자전거는 갑자기 뒷바퀴가 균형을 잃고 흔들렸다.

 순간 나도 자전가와 함께 균형을 잃고 그대로 길옆으로 나가떨어지며 뒹굴며 찢지고 부딪히며 내 몸은 어디론가 날아가고 있었다. 이대로 죽는건가라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드는 순간 내 몸은 데굴데굴 굴러 도로옆 좁은 배수로로 떨어졌다.


몇 초밖에 되지 않는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 순간은 슬로비디오처럼 정확히 내 머릿속에 지금도 그려지고 있다.

이제 이 사고의 끝에 도달했구나 생각하니 살아있는 내가 나무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배수로를 기어 나와 내 몸을 보니 엉망이었다.

안경은 어디 간데없고 팔과 다리는 유혈이 낭자하였다.

다행히 다리와 팔은 움직일 수 있어서 뼈를 다치진 않았구나 하며 안도를 했다. 지난해 자전거 낙상으로 허리뼈를 골절당한 상태라 허리도 움직여보니 이상이 없는듯했다. 천만다행이었다.


근데 외부로 보이는 상처는 너무도 심한 상태라  119 를불러야 할 상황이었지만 119는 자전거를 실어주지 않아 일행에게 그 짐을 떠 넘겨야 할 상황이라 택시를 부르기로 했는데 산길 어딘가로 오려고 하는 택시는 없었다. 결국 가까운 병원을 검색하니 6킬로 전방에 의원이 있어서 거기까지 다친 몸으로 자전거에 다시 오를 수밖에 없었다.


한참을 달려 병원에 도착해서 진료실로 들어가니 시골병원 의사는 불친절하기  짝이 없었다. 파상풍 주사와 식염수 소독으로 상처 위에 뿌려주기만 하고 붕대로 바로 감아주었다.

이곳 시골에서 더 이상의 의료 혜택을 받기는 불가능해 보였다. 둘째 날 숙소인 강릉까지 갈 수가 없어서 용달을 부르고 한참을 병원 앞 도로에 걸인처럼 주저앉아 트럭을 기다렸다.

한 시간 반이 지난 후에야 트럭이 도착해서 자전거를 싣고 혼자 강릉숙소로 향했다.

일행의 일주 라이딩은 계속되었고 난 혼자 강릉 숙소에서 휴식을 취했다. 다음날 일행들과 함께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무겁기 그지없었다. 지난번 사고로 허리를 크게 다쳤는데 1년이 지나 또 이렇게 사고를 당하니 아내에게 뭐라 변명해야 할지 난감하기만 했다.  


허리를 다쳐서 새로 시작한 수영과 척추근력운동도 당분간 못할 지경이 되어버렸다. 한 달간의 치료동안 외상은 많이 나았지만 오른쪽 어깨가 너무도 통증이 심하여 결국 MRI촬영결과 회전근개 파열이라는 집단을 받고 사고 후 3개월이 지났지만 아직도 치료를 받으며 재활훈련 중이다.

나의 어이없는 욕심에 일어난 사고로 나는 죽음을 목도할 경험을 하고 이제 정말 안전만을 위주로 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외상치료를 해주던 간호사가 이렇게 다치고도 또 자전거 타실거죠라고 물었던 기억이 난다.


라이딩의 매력에서 도저히 헤어날 수가 없으니 어쩌겠는가. 몸이 나으면 난 또 안장 위에 몸을 앉힐생각이다. 이제는 욕심 없이 샤방샤방 천천히 주위를 여유롭게 둘러보며 남은 인생도 라이딩을 즐기며 살아갈 생각이다.

트라이폴드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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