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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정 May 28. 2022

불합격을 받아들이는 방법

  인생을 살면서 수없이 겪어도 적응되지 않는 것 중 하나가 불합격을 마주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불합격도 겪다 보면 내성이 생길 줄 알았는데, 매번 슬프고 가슴 아픈 건 나이와는 무관하더라. 초등학교 반장 선거에서 떨어졌을 때도 그렇고, 원하는 대학교에 불합격했을 때도 마찬가지며, 취업준비생으로 수없이 많은 불합격 통보를 받을 때도 그랬다. 그리고 최근 부서이동 신청에서 떨어졌을 때도. 그때나 지금이나 불합격을 마주한 순간, 마음의 온도가 차디 차게 식어가는 것은 여전하다.

  내성이 생기지 않아 자연히 생존법을 터득한 건지는 모르겠으나, 2에서 3으로 나이 앞자리 수가 달라지면서 불합격을 받아들이는 자세도 달라졌다. 20대에 불합격에 대한 타격감이 -100이라면 30대의 지금은 타격감이 -25 정도랄까. 게임도 하다 보면 경험치가 오르듯, 나의 불합격 처리능력 경험치도 쌓인 게 아닐까 생각한다.

  대부분의 20대가 꿈과 희망에 가득 차 있는 것처럼 그때의 나는 나 자신이 굉장히 특별한 줄 알았다. 되고 싶은 것도 많았고, 하고 싶은 것도 많았다. 당연히 노력한 만큼 성과가 따라올 거라 생각했었고, 그 당연함이 당연하지 않다는 걸 느껴갈 때마다, 그러니까 불합격할 때마다 자조와 비관이 늘어갔다. 그때는 ‘왜’라는 생각을 많이 하며 스스로 상처에 흙을 뿌려대곤 했다. ‘내가 왜 안됐을까?’ , ‘내가 합격한 사람보다 부족한 게 뭘까?’, ‘왜 나의 진가를 몰라주지?’라는 생각들이 상처를 곪게 만들었다. 자연히 남과 나를 비교하게 되고, 비교가 쌓일수록 나 자신이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지곤 했다. 그때는 내가 반짝반짝 빛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관문을 통과하는 것이 내 가치를 높이는 일이라고 생각했고, 불합격을 마주할 때마다 빛나지 못한다는 사실은 스스로 빛을 나보기도 전에 소멸해가는 것 같아 내 자신과 나의 인생을 송두리째 비관하곤 했다. 자조와 비관이 해결책이 아님을 머리로는 알지만, 가장 택하기 쉬운 도피처였다. 나를 갉아먹는 도피처. ‘만약에’를 가정하며 상처에 흉이 지도록 만들었고, 그 흉을 낫게 하는 건 시간이었다. 물론 그 약효가 들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이가 들수록 점점 나 자신이 특별하지 않음을 깨달아 갔다. 자조와 비관이 쌓여서 체념을 하게 된 것이냐? 그건 아니다. 그냥 자연스럽게 ‘아, 평범하구나. 아니, 평범하기도 힘들구나’라는 생각이 나이가 들수록 자연히 들었다. 그러니까 상투적으로 표현하자면, 나이가 한 살, 두 살 먹어갈수록 별이 밝게 빛나는 것은 별이 밝아서가 아니라 어둠이 깊어서임을 알게 되었달까. ‘무수한 실패와 좌절들이 쌓여서 언젠가는 빛나겠지.’라는 게 20대 중반에서 후반까지의 생각이었다면, 30대의 지금의 나는 ‘아님 말고.’라는 마인드를 가지게 됐다. 이미 벌어진 일에 구태여 마음 괴롭히지 않는 게 상책이라는 것을 알게 된 나이다.

  최근 부서이동 신청에서 떨어졌을 때, 마음은 굉장히 쓰라렸다. 이내 가라앉는 마음을 부유하게 만들고자 ‘내 자리가 아녔겠거니.’라고 생각했다. ‘술 한잔 마시고 털어버리면 될 일이다. 그저 지금 하는 일 하다 보면 또 다른 길이 보이겠지.’라고 다독였다. 그래도 마음이 답답해서 최근 본 드라마 속 장면을 떠올렸다. 승진 발표가 나기 전, 답답한 마음에 시원하게 큰 일(대변)을 보고 싶어서 평소 안 먹던 라테 두 잔을 마신 주인공이 내내 신호가 없다가 집까지 가려면 한참 멀었는데 갑자기 신호가 와서 부리나케 집에 와 볼 일을 보며, 오늘도 중간에 싸지 않고 무사히 넘어갔음에 감사하다고 말하는 장면을 말이다. 드라마 속 주인공도 내 나이대였다. 그래서 우스운 이 장면이 묘하게 공감이 됐었다. 마음이 답답한 나는 시원하게 취하고 싶어서 평소 마시지 않는 막걸리를 사들고 퇴근했다. 막걸리를 한, 두 잔 마시고, 가족들 앞에서 울거나, 아무한테나 전화해서 내 얘기 좀 들어달라고, 위로 좀 해달라는 주사를 부리지 않고 무사히 넘어갔다. 그리고 평소처럼 똑같은 시간에 일어나 똑같은 길로 출근을 하고, 별 다를 것 없는 일상을 보냈다.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이미 벌어진 일은 벌어진 대로 받아들이고 살아가야 한다는 걸, 이제는 지나온 삶을 통해 알게 되었다. 원인을 찾거나, 가정을 하며 시간을 낭비하거나 마음을 상하게 하는 대신에 나름대로 수습하고, 돌보며 이제는 나 자신을 감당할 수 있다. 특별할 것 없지만 특별하지 않은 방법으로 나 자신을 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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