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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정 Jun 05. 2022

오늘도 별로였던 나를 마주하며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한없이 가벼워야 할 퇴근길은 오늘도 짓눌린 가슴 때문인지, 한 발 한 발 내딛는 발걸음이 천근만근 무겁게만 느껴졌다.

 타워식 주차장에서 차를 뽑아 기다리는데, 빨리 집에 가고 싶은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오늘따라 유난히도 오래 걸렸다. 지하에서 차가 올라오길 기다리며, 별로였던 오늘의 내 모습을 곱씹고 곱씹었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고. 별거 아닌 일에 짜증을 내지 말았어야 했고, 별거 아닌 일에 ‘나라면 이랬을 텐데’ 하며 가정하지 말았어야 했다며.

 

  유난히도 피곤한 날이었다. 가기 싫다는 생각으로 무거운 몸을 이끌고 출근을 했는데, 아침부터 처리해야 할 일이 쌓여있었다. 같이 일하는 동료가 일을 다 처리하지 못해 같이 하는데, 일을 하면 할수록 불만이 쌓이던 게 화근이었다. ‘나는 이만큼 할 동안 도대체 뭘 하는 거지?’라는 유치한 생각이 들었다. 업무를 양적으로 나눠서 누가 더 많이 했네, 마네를 생각하는 것 자체가 유치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조금 빨리 처리해줄 수 있어요?’라는 말을 못 했다. 말을 하면 유치한 내 모습을 들킬까 봐 그저 함구한 채 묵묵히 일만 했다. 그럴수록 마음은 점점 더 유치하고 옹졸해졌다. 알 수는 없지만 나보다 더 꼼꼼하게 처리하느라 그런 것이라 생각하며, 좀 더 열심히 마우스와 키보드를 두드려댔다. 이럴 거면 그냥 말을 했어야 했다. 조금만 더 빨리 처리해줄 수 있냐고. 업무시간이 지날수록, 처리되는 업무가 쌓여 갈수록 ‘나라면 저렇게 일 안 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였으면 급한 일부터 처리했을 텐데.’ , ‘나였으면 간단한 일부터 처리했을 텐데.’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할 불만들이 마음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얼추 일이 정리될 무렵 나는 평소보다 진이 빠져버렸고, 조금은 예민해져 있었다. “아까 쓴 품의 잘 못 된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라는 동료의 목소리에 불현듯 짜증이 몰려왔다. ‘뭐가 잘 못 됐다는 거야.’라는 생각에 짜증 한번, ‘아니, 이럴 거면 처음부터 본인이 하지.’라는 생각에 짜증 두 번. 짜증이 난 채로 기안한 품의서를 봤는데, ‘나 일하기 싫어요’를 광고하듯 여기저기 실수가 가득했다.


  ‘이렇게 할 거면 하질 말지. 왜 혼자 다 껴안아.’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수를 확인해 준 동료에게 ‘아, 네. 확인해 볼게요’라는 짧은 말만 하고 고맙다는 말은 못 했다.

  ‘왜 이렇게 옹졸하고 유치하냐…….’

 

  연차가 쌓일수록 관성으로 일하게 됨을 느낀다. 그럴수록 불만이 쌓여가고, 놓치는 게 많아지며 어느 정도 꼰대력도 높아졌다.

  오늘의 나는 너무나도 관성적이었다. 그래서 불만이 쌓여갔고, 놓치는 부분이 많았으며, ‘나였으면 안 그랬다’는 비교질로 꼰대력도 발휘했다.

  타성에 젖어 불만과 꼰대력을 발산하는 내가 별로였다. 그래서 오늘 하루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라는 후회를 ‘그러지 말아야지’라는 다짐으로 무거운 마음을 털어냈다. 별로였지만, 별로이고 싶지 않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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