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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정 Dec 21. 2021

비극인 줄 알면서도 다시 부르리, 뮤지컬 하데스 타운

 ‘비극인 줄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뮤지컬 <하데스 타운>은 이러한 물음에 다시 노래 부르는 오르페우스처럼 희망을 놓지 말자는 메시지를 던진다. 비록 그 결말이 원하는 방향이 아닐지라도 이번에는 다를 거라 믿으며 말이다. 우리는 살면서 수도 없는 의심을 한다. 삶의 경험이 쌓이다 보면, 시작하기도 전에 ‘어차피 안 되겠지’라며 스스로 단념하기도 하는데, 이러한 의심 속에서 삶의 방향을 바꾸는 건 ‘희망’이다. 일말의 희망이라도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가 ‘이번엔 다를 거야’라고 믿으며 삶에 의지를 다지게 된다.

 

 뮤지컬 ‘하데스 타운(Hadestown)’이 특별한 이유는 도돌이표처럼 이어지는 극의 내용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노래 부르는 오르페우스의 모습에서 삶의 의지를 다지게 된다는 데 있다. 필자가 뮤지컬 <하데스 타운>을 여러 번 보게 되는 이유도 이 점에 있다. 이번에는 다를 거라 믿으며 일말의 희망을 품게 되는 것. 그것이 뮤지컬 하데스 타운을 추천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쯤이면 뮤지컬 <하데스 타운>이 어떤 작품이기에 ‘희망’이라는 삶의 메시지를 전하나 궁금할 것이다. 뮤지컬 <하데스 타운>은 그리스 로마 신화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사랑 이야기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뮤지컬이다.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그리고 지하의 왕 하데스와 그의 아내 페르세포네의 이야기를 그리며 서사시 (Epic I, II, III)를 매개로 작품이 전하고자 하는 핵심을 관통한다. 성스로 (Sung-through)로 진행되는 뮤지컬이지만 중간중간 대사로 이어지기 때문에 서사를 이해하는데 어렵지 않은 극이다.


 모든 이야기는 내레이터이자 ‘전령의 신’ 헤르메스를 통해 전개되는데, 극의 포문을 여는 넘버 ‘Road to Hell (지옥으로 가는 길)’ 을 브라스밴드의 흥겨운 라이브 연주에 따라 리듬을 타며 등장인물 소개와 극의 개괄적인 내용을 전달한다.

 극의 주인공이자 서사를 이끌어 가는 뮤즈의 아들 오르페우스는 가난하지만 베푸는 재능이 있는 음유시인이다. 어느 날 우연히 만난 에우리디케에게 첫눈에 반해 청혼하고, 세상의 가혹함을 일찍 알아버린 현실적인 에우리디케와 달리 몽상가인 오르페우스는 자신이 쓰는 곡이 완성되면 다시 봄을 되찾을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 곡이 바로 ‘Epic’. 하데스와 페르세포네가 사랑을 나눴던 이야기이다.

 하지만 사랑만으로는 춥고 배고픈 현실을 이겨내기 어려웠고, 운명의 여신들은 그저 바람 따라서 운명에 따르라며 에우리디케에게 속삭인다. 결국 에우리디케는 우연히 만난 하데스의 제안을 떠올리며 스스로 지옥행 열차에 오른다. 도망친 곳에 낙원 없다는 말이 있듯,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떠난 하데스 타운은 에우리디케의 평안을 보장해주지 않았다. 뒤늦게 에우리디케의 죽음을 안 오르페우스가 헤르메스의 조언을 듣고 하데스를 찾아가겠다 결심하지만, 이미 에우리디케는 하데스의 계약서에 서명을 마친 뒤였다.


 이때 오르페우스가 부르는 넘버 ‘Wait for me’는 뮤지컬 <하데스 타운>을 대표하는 넘버인데, 계속 머릿속에 맴돌 만큼 각인되는 중독성 강한 멜로디와 무대 연출이 뛰어난 곡이다. 뮤지컬 <하데스 타운>은 미국 뉴올리언스를 연상케 하는 작은 재즈바에서 무대 변화 없이 진행된다. 하지만 무대 전환 없이 장면을 세련되게 묘사하는 곡이 바로 ‘Wait for me’인데, 오르페우스를 비추는 스포트라이트와 일꾼의 수만큼 비추는 등불의 움직만으로 오르페우스가 하데스 타운으로 향하는 여정을 감각적으로 그려내는 장면이다.

 

 수많은 부와 막강한 권력을 쥔 하데스, 그곳에서 24시간 내내 노예처럼 쉼 없이 일하는 노동자들의 모습에서 미국 대공황을 연상시킨다. 사랑하는 연인이 지상으로 떠날까 의심하며 열심히 일구어낸 하데스 타운이지만, 그의 여인 페르세포네는 지상은 추운데 이곳은 왜 이리 덥냐며 ‘이건 정말 정상 아니야’라고 말한다. 신화 속 페르세포네는 하데스에게 납치돼 지하세계로 끌려갔다고 알려져 있지만, 작품 속에서는 하데스와 진심으로 사랑을 나눈 대상으로 나온다. 하지만 너무 오래된 사랑 이야기. 술로 의존하며 권태로운 생활을 이어가고 있을 뿐이다.  가진 것들을 잃을까 두려워 지켜야 할 것들이 이미 사라졌다는 걸 모른 채 살아가던 하데스가 오르페우스의 노래, Epic III를 들으며 잊고 있던 소중함을 문득 깨닫는 장면과 금기를 깨고 에우리디케를 데려가려는 오르페우스의 도전을 보는 2막의 흐름은 굉장히 인상적이다.


 신화의 내용이 그렇듯 ‘하데스 타운’ 은 비극을 향해 달린다. 끊임없는 의심으로 안타까운 결말을 낳지만, 극은 좌절보다는 새로운 희망의 메시지를 던진다. 무수한 슬픔 속에서 한 가지 기쁨을 찾는 것. 그 작은 희망이 언젠가 결말을 해피엔딩으로 바꿀지 모른다는 의지를 다지며 다시 노래한다.


 우리네 인생도 마찬가지다. 내 앞에 높여진 수많은 갈래길에서 의심하고, 제자리로 돌아와 또다시 시작하는 서사가 쓰이겠지만, 그때마다 기억해야 할 것은 이번엔 다를 거라 믿으며 의심 속에서도 희망을 품으며 의지를 다지는 것. ‘그럼에도 부르리라. 중요한 것은 결말을 알면서도 다시 노래를 시작하는 것. 이번엔 다를지 모른다고 믿으면서.’ 헤르메스가 엔딩을 장식한 대사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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