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혼자 살 수 있지만, 남자는 혼자 살 수 없다는 말의 진리
상하이 집으로 온 첫날! 경악을 금치 못했다. 분명 청소해 주는 이모님이 있었는데, 집에는 온통 홀아비냄새가 가득했다. 수건에도 소파에도,, 집안 곳곳에는 쾌쾌한 수컷의 냄새가 짙게 스며들어있었다. 게다가 침대에는 이불이 없다! 한국에서 이삿짐을 포장할 때 이불을 같이 보내지 않았던 것을 기억하지 못했다. 침낭이랑 겨울 담요, 얇은 담요,, 이런 것들을 가져온 신랑은 침대 위에 침낭을 매트 삼아 깔고 그 위에 담요를 덮고 살았다. 게다가 베개도 없다. 커다란 쿠션을 베개 삼아 이용했다.
나는 당장 쿠션 커버를 벗겨서 세탁을 하려고 했다. 그런데 베개솜까지 불쾌한 냄새가 짙게 배어있었다. 상하이에 도착한 날은 4월 초였다. 밤에는 살짝 추워서 겨울 이불이 필요했다. 당장 온라인에서 구매를 해도 배송이 며칠 걸리기 때문에 신랑이랑 이불을 사러 마트로 갔다. 다행히 까르푸가 인근에 있어서 방문을 했는데, 별로 좋아 보이지도 않은 이불이 왜 이렇게 비싼지.. 베개 솜 두 개랑 차렵이불 하나 사는데 거의 10만 원이 넘는 돈을 썼다. 좋은 재질이라면 그 돈이 아깝지 않겠지만, 뭔가 비싸게 산 듯한 그런 강한 느낌이 들었다.
게다가 주방은 더 최악이었다. 타일은 묵은 때 같은 거뭇거뭇한 것들이 가득 묻어있고, 상온에 꺼내져 있는 양념 위에는 찐득거리는 기름으로 덮여있었다. 라면밖에 끓일 줄 모르는 신랑이 주방에 애정을 갖는다는 건 기대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일주일에 세 번 두 시간씩 청소해 주는 이모님이 있었다. 이모님은 신랑이 라면을 먹고 하지 않은 설거지정도만 했다. 주방 바닥 타일은 원래 이렇게 새까만가 할 정도로 더러웠다.
상하이에 온 첫날은 이불을 사고, 밖에서 외식을 하니 저녁이 되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상하이에서 첫날밤을 보내고 이튿날 신랑을 출근을 했고, 나는 집에 혼자 남겨졌다. 청소 이모님이 오시는 날이라고 해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모님이 어떻게 청소하는지 보고 싶었다. 그래서 나름 이모님이 불편하지 않게 살짝 자리를 피하며 몰래몰래 이모님이 청소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오자마자 빨래통에 있는 모든 빨래를 수건, 속옷, 양말 구분 없이 한꺼번에 세탁기에 넣고는 설거지를 한다. 그리고 청소기를 돌리고 걸레로 먼지를 닦은 다음 바닥을 밀대로 닦았다. 그리고 세탁이 끝난 빨래를 널고, 화장실 청소를 하고 버릴 쓰레기를 입구에 둔 뒤 청소가 끝났다고 갔다. 2시간을 채우지 않았다.
냉동실에 아이스크림이 흘러 안에 통이랑 바깥에 아이스크림이 묻어있는데 안에 있는 통만 닦고, 냉장고 외관에 묻은 아이스크림은 닦지 않아서 여기에 아직 아이스크림이 묻어있다고 말하니, 그제야 봤다며 다시 닦았다.
이모님을 만난 첫날, 나는 완곡하게 돌려서 내가 있는 동안에는 내가 청소를 하니깐 청소해 줄 필요가 없다고 했다. 나중에 내가 한국에 가게 되면, 그때 다시 와서 도와달라고 했다. 하지만 바로 자를 수 없으니 이번주까지 청소를 해달라고 했다. 그런데 나는 분명 완곡하게 말을 했는데 이모님은 나의 뜻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다. 결국 내가 원하는 대로 그 주까지만 청소를 하고 앞으로는 올 필요 없다고 돌려보내긴 했지만,, 신랑은 금액을 조금 더 더해서 보냈다고 한다.
이모님이 떠나고 나의 대청소는 시작됐다. 주방 가스레인지 쪽 타일은 묵은 때가 아니라 비교적 쉽게 닦이는 때였다. 조금만 힘을 주니 타일은 다시 깨끗해졌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찐덕거리는 기름때들도 말끔하게 다 닦았고, 주방 타일 바닥도 조금 힘을 주니 다시 깨끗한 타일로 바뀌었다.
그리고 한인마트에서 유한락스를 사서 수건을 락스에 담갔다가 깨끗하게 세탁을 했다. 그런데 건조기를 내가 사용을 못하는 건지 분명 전원이 켜지고 소리는 나는데 통이 돌아가지 않는다. 부동산 중개인에게 말을 하니 와서 보더니 이건 하나 사는 게 좋겠다며 새 건조기를 하나 사서 보내주었다.
그리고 방안 곳곳에는 이삿짐을 포장한 박스가 몇 개가 그대로 있었다. 신랑에게 물어보니 그냥 필요한 것만 꺼내서 썼다고 한다. 나는 방안에 방치된 모든 포장 박스를 다 꺼내기로 했다. 박스를 여는 순간 나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옷에는 곰팡이가 피어있었고, 없는 줄 알았던 베개도 두 개나 있었다. 옷걸이도 없어서 사려고 했는데, 먼지 쌓인 옷걸이도 무더기로 나왔다.
법인장 와이프에게 위챗으로 세탁소를 물어본 뒤, 세탁소에 연락해서 와서 세탁물을 수거해가게 했다. 곰팡이 난 옷들을 세탁하는데 적지 않은 비용이 들었다. 그렇게 한동안은 집에서 계속 세탁을 했다.
그런데 집안의 문제가 여기서 끝난 건 아니었다. 화장실 쪽 문이 잘 안 닫혔다. 그런데 그쪽만 잘 안 닫힌 건 아니었다. 주방 쪽 문도 잘 안 닫히고, 베란다 문은 잘 열리지도 닫히지도 않았다. 그리고 커튼도 위에 고리가 부식되어 반은 달려있고 반은 매달려있었다. 신랑에게 이야기를 했더니, 부동산 중개인을 연결해 주었다. 중국어 소통이 조금 어려웠던 신랑은 이런 구체적인 사항들을 요청하지 못했었다. 중국어를 하는 내가 왔으니 이 모든 것들을 나는 해결해야겠다 다짐했다.
부동산 중개인은 수리하는 기사님과 함께 집으로 직접 방문을 했고, 어떤 부분이 문제가 있는지 다 확인을 하고 돌아갔다. 그 뒤로 또 다른 기사님과 방문을 했고, 창문 쪽에 윤활유를 뿌려보더니 이건 이렇게 해결되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또다시 돌아갔다. 네 번째 방문할 때는 결국 새로 온 수리 기사가 와서 창문을 뜯어내고 교체하는 작업을 했다. 하지만 그도 완벽한 수리는 아니었다. 겨우 문을 닫히는 정도로만 고쳐주었다. 그리고 더 재미있는 것은 베란다 창문이 총 4쪽이었는데 기사님이 어느 쪽 창문을 더 많이 여는지 물어봤다. 그래서 가운데 쪽이 아닌 바깥쪽 창문을 더 많이 연다고 했다. 그랬더니 바깥쪽 창문만 잘 열리도록 고쳐주었다. 여전히 지금도 베란다 가운데 창문 두쪽은 힘을 잔뜩 주어야지 열리고 닫힌다.
이번에 상하이에 주재원가족으로 생활을 하로 오면서 따로 어학당이나 학교의 어학연수 프로그램을 등록하지 않았다. 중국어를 더 배우고 싶기는 했지만,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스스로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본의 아니게 부동산 중개인과 수리하러 온 기사님들과의 대화로 나의 중국어는 조금씩 늘기 시작했다. 정말 실용 중국어를 실생활에서 사용하면서 배우게 된 것이다.
상하이에 와서 나는 가장 먼저 청소하고 빨래하고, 수리하고,, 그렇게 시간이 지나갔다. 최악이었던 집도 조금씩 좋아졌고 나의 중국어도 조금씩 늘기 시작했다. 여자는 혼자 살 수 있어도 남자는 혼자 살 수 없다는 말의 진리를 몸소 깨닫게 되었던 사건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