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를 다시 삶 속으로 되돌리는 UX적 해석
아이 키우는 문제를 두고 “시간이 없다”는 말을 흔히 한다. 직장 때문에 시간이 없고, 개인 생활 때문에 시간이 없다는 푸념이다. 그런데 조금만 시선을 바꾸면, 이 “시간 부족”이 단순한 개인 사정이 아니라 사회 구조가 만들어낸 경험일 수 있다.
예전 마을 공동체에서 육아는 지금과 전혀 다른 성격이었다. 어른과 아이의 생활공간은 따로 나뉘지 않았다. 밭에서 일을 하든, 마을 길에서 이야기를 나누든, 집안일을 하든 아이는 그 공간 안에 함께 있었다. 아이는 어른 곁에서 지켜보며 배웠고, 공동체 속에서 여러 어른에게 돌봄을 받았다. 그렇기에 육아는 “별도의 과업”이 아니라 삶 속에 녹아든 자연스러운 경험이었다.
하지만 산업화와 도시화는 이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었다. 부모의 생활공간은 직장으로, 아이의 생활공간은 가정·학교·보육시설로 분리되었다. 이 분리는 단순한 공간의 이동이 아니라, 부모가 육아를 경험하는 방식을 바꿔 놓았다. 더 이상 아이는 일상의 곁에 있지 않고, 부모는 퇴근 후나 주말에 시간을 따로 떼어내서 육아를 해야 한다. 육아가 “일상”에서 떨어져 “과업”이 된 것이다. 오늘날 부모가 공통적으로 느끼는 시간 부족과 육아 부담의 뿌리는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사회학과 역사학은 이 변화를 오래전부터 분석해왔다. 필리프 아리에스는 『아동기의 탄생』에서 아동이 근대에 들어 독립된 존재로 인식되었다고 말했고, 여러 사회학자들은 공동체의 돌봄이 개인, 특히 여성에게 전가되었다고 진단했다. 그리고 정책적 대안도 주로 제도적 차원에서 마련되었다. 국공립 보육시설 확대, 직장 어린이집 설치, 육아휴직과 같은 제도적 보완책은 부모의 부담을 덜어주는 데 기여했다. 하지만 여전히 육아를 “분리된 과업”으로 전제하기 때문에, 부모가 체감하는 경험적 문제까지는 충분히 해결하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다.
여기서 UX적 관점이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 핵심 질문은 이제 “누가 아이를 돌보는가?”가 아니라, “부모는 육아를 어떻게 경험하는가?”이다. 과거에는 육아가 일상에 스며든 경험이었다면, 오늘날에는 삶에서 떨어져 나온 별도의 업무로 체감된다. 이 경험의 전환이야말로 우리가 직면한 문제의 본질이다.
그렇다면 경험을 다시 설계할 수 있을까? 구체적 방안을 상상해 보자.
첫째, 재택근무의 강화다. 지금까지의 육아휴직은 일과 육아를 분리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재택근무는 부모가 아이와 같은 공간에서 업무와 돌봄을 동시에 이어가도록 설계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부모는 시간을 따로 떼어내지 않고, 일상 속에서 아이와의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둘째, 아이 동반 사무실 모델이다. 사무실 안에 아이를 위한 공간을 두고, 잠시 필요할 때만 맡길 수 있는 ‘육아 보조자’를 상시 배치한다. 이는 종일 아이를 맡기는 회사 어린이집과 다르다. 부모와 아이가 공간을 공유하면서도 업무 집중이 필요할 때는 보조자의 도움을 받는 구조다. UX적 언어로 말하면, 이는 부모가 느끼는 “공간적 단절”을 줄이고 “경험의 연속성”을 회복하게 해 준다.
셋째, 생활-업무 융합형 공간이다. 집 근처의 공유 오피스에 공동체 보육을 결합해, 부모가 같은 생활 동선에서 일과 돌봄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른바 ‘마을 오피스’ 모델이다. 이렇게 되면 육아는 분리된 과업이 아니라, 다시 생활의 흐름으로 돌아오게 된다.
넷째, 위험 환경에 맞는 대안. 제조업, 건설업, 의료현장처럼 위험·오염 가능성이 높은 환경에서는 아이와 같은 공간을 공유하거나 가까이 두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이 경우에는 “경험 재설계”보다는 제도적 보완이 중심이 될 수밖에 없다. 예컨대 근로시간 단축, 교대제 개선, 직장 어린이집, 국공립 보육시설 확충과 같은 기존 제도를 충분히 활용하고 강화하는 것이 부모의 경험을 지탱하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다. 이는 UX적 이상과는 다르지만, 안전이라는 절대적 조건 앞에서는 고전적 제도가 여전히 필수적이며 가장 합리적인 대안임을 인정해야 한다.
팬데믹 동안 우리는 잠시 그 가능성을 엿본 적이 있다. 재택근무를 하면서 부모와 아이가 같은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자, 비록 힘든 점도 많았지만 동시에 “육아가 다시 삶의 일부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경험을 했다. 이 경험은 단순한 제도나 복지의 문제가 아니라, 경험 자체를 재설계하는 접근이 필요함을 보여준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제도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제도는 여전히 필요하다. 다만 제도가 효과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경험과 행동을 중심에 두고 설계되어야 한다. 지금까지의 논의가 제도 자체를 강화하는 데 머물렀다면, 앞으로는 부모가 육아를 어떻게 경험하는지를 반영한 제도가 필요하다. 육아가 삶의 일부에서 떨어져 나온 과업으로 변한 지금, 필요한 것은 경험을 다시 일상 속으로 통합하는 제도적·공간적 설계다. 바로 여기에 UX적 해석의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