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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장악의 원리

아메리칸 갱스터(2007) - 리들리 스콧

by 김영빈


영화 아메리칸 갱스터는 1970년대 마약 시장을 배경으로, 한 범죄자가 어떻게 자신만의 방식으로 시장을 장악하고 성장해 가는지를 보여준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단순한 범죄 서사가 아니다. 유통 혁신, 독점적 지위, 브랜드 관리 등 프랭크 루카스의 사업 운영 방식은 합법적인 비즈니스 세계에서도 유효한 전략적 통찰을 제공한다. 그는 어떻게 경쟁을 피하고, 시장의 질서를 바꾸며, 브랜드를 지켜냈을까? 이 영화 속 프랭크의 행보를 통해 우리는 시장 장악의 핵심 원리를 발견할 수 있다.




저비용-직거래


네이트: 그 정도 양을 원하면 여러 곳에서 사야돼. 희석된 걸로.

프랭크: 그렇겐 싫어.

네이트: 뭘 원하는진 알아. 그럼 중국 조직을 찾아가야돼. 만나준다면 다행이지만!

프랭크: 걔들 물건도 다 희석된거야. 생산자에게 사고 싶어.

네이트: 직접 하시겠다?

프랭크: 왜 안돼? 이 먼데도 왔어.


1970년대 미국의 마약 시장은 부패한 경찰과 중간 유통업자들로 인해 비효율적이었다. 경찰은 마약을 압수한 뒤 이를 다시 희석하여 마약상들에게 판매했고, 거리에는 순도 낮은 마약만이 유통되었다. 이로 인해 마약상들은 높은 원가와 불안정한 공급망에 의존해야 했고, 갱들 간의 피 튀기는 경쟁이 이어졌다.

이 혼란 속에서 프랭크는 남다른 전략을 구상했다. 기존의 유통 구조를 따르지 않고, 직접 생산자로부터 마약을 구매함으로써 시장을 장악할 방법을 모색한 것이다. 그는 베트남전 참전 경험이 있는 퇴역 군인 클로드의 정보를 활용하여, 동남아에서 순도 높은 헤로인을 대량으로 저렴하게 확보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프랭크는 방콕으로 날아가 배다른 형제 네이트를 만나, 생산자와 직접 거래할 방법을 찾는다. 기존의 마약상들이 여러 유통 단계를 거치며 희석된 제품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과 달리, 그는 원료 공급자와 직접 연결됨으로써 획기적인 원가 절감에 성공한다.

이 전략의 결과는 혁신적이었다. 프랭크는 기존 유통망을 무시하고, 자신만의 직거래 루트를 통해 순도 높은 헤로인을 미국으로 밀수했다. 낮은 원가를 바탕으로 경쟁자들보다 훨씬 높은 품질의 제품을 압도적인 가격 경쟁력으로 제공할 수 있었고, 이는 곧 시장 지배력으로 이어졌다. 그는 단순한 마약상이 아니라, 원가 절감과 유통 혁신을 통해 강력한 PB(Private Brand) 상품을 구축한 사업가였다.

프랭크의 방식은 합법적인 비즈니스에서도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유통 단계를 최소화하고, 원가를 혁신적으로 절감하는 전략은 업계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핵심 요소다. 이는 곧 대기업과 기존 질서에 도전하는 많은 스타트업들이 참고할 만한 전략이기도 하다.




독점적 지위


카타노: 독점을 어떻게 생각해?

프랭크: 보드 게임요?

카타노: 독점을 불법화한건 다들 경쟁을 싫어해서야. 독점 업체와의 경쟁을. 유제품이 독점돼봐. 축산 농가 다 죽어.

프랭크: 저도 살아야죠.

카타노: 그래, 다 똑같애 여긴 미국이야. 남을 희생시키며 돈을 벌어선 안돼. 그건 비 미국적이지. 우유값이 왜 적정가보다 비쌀까? 공정 거래를 위해선 통제가 필요해.

프랭크: 전 공정한 값을 매겼어요.

카타노: 안 공정해. 양아치, 건달인 자네 고객은 만족해 하겠지만 경쟁자인 우린 달라. 우리 생각 해봤나? 생각 해봤어?

프랭크: 축산 농가요? 생각해봤죠, 그들이 제 생각해주는 만큼!

카타노: 내 생각을 말해봤어. 자네 물량 중 일부를 도매로 돌리면... 앉아. 우리가 판매를 맡을게.

프랭크: 이대로 만족해요. 할렘을 장악했으니까.

카타노: 그건 구멍가게지. 더 큰 물에서 놀아. LA, 시카고, 라스베가스 전국을 무대로! 그럼 내 보호 하에 사업할 수 있어. 편히 장사해야지. 난 트인 사람이야. 헌데 내가 매일 만나는 인간들은 생각이 막혔지. 흑백 차별이 나쁘다? 걔들은 그런거 몰라. 생각을 바꿀 인간들도 아니고. 허나 내가 설득하면 통하지. 편해진다는건 그런 뜻이야.

프랭크: 얼마 줄건데요? 킬로당 8만? 나도 트인 놈이에요. 5만쯤 고려해보죠.


자신의 PB 상품인 '블루매직'으로, 이제는 마약계에서 거대해진 프랭크. 마약 범죄 조직의 원로인 카타노가 프랭크를 초대한다. 카타노는 프랭크가 시장을 독점하고 있다고 말하고 관련 산업 종사자들의 불만을 대신 토로한다. 프랭크와 카타노는 서로 간을 본다. 그 때 카타노는, 흑인이자 할렘의 밑바닥에서 성장한 프랭크와 주요 소매상들 사이에서 자신이 중계자가 되겠다는 제안을 한다. 그렇게 프랭크에게 도매 유통을 제안한다. 그리고 프랭크는 거래를 받아들인다. 드디어 프랭크는 할렘을 벗어나 전국에서 손 꼽히는 존재가 된다.

이제 프랭크 루카스는 단순한 마약상이 아니라, 시장의 구조 자체를 변화시키는 존재가 되었다. 기존 마약 시장은 다수의 갱단과 부패한 경찰이 유통망을 나누어 가진 분산된 구조였지만, 프랭크는 블루 매직이라는 브랜드를 통해 시장의 표준을 재편하고 중앙집권적 구조를 형성한다. 그의 성공은 단순한 독점이 아니라, 경쟁을 넘어 시장의 "정치적" 질서를 새롭게 설계하는 과정이었다. 카타노와의 협상에서 그는 자신의 독점적 지위를 유지하면서도 경쟁자들에게 유통망을 개방하는 전략을 택한다. 위 장면은, 곧 "힘의 경쟁"에서 "구조적 통제"로의 전환이며, 시장 내에서 단순한 플레이어가 아닌 "게임의 룰을 정하는 자"로 자리 잡는 순간을 보여준다.




브랜드 관리


니키: 나의 친구! 어서와.

프랭크: 잘 지냈나.

니키: 덕분에, 반가워.

프랭크: 할말이 있어.

니키: 이리 와.

프랭크: 다들 만족해 해. 찰리, 이태리 계, 짭새들, 자네만 빼고 모두! 모든게 완벽한데 왜 판을 깨려는지 이해가 안돼. 사업에서 브랜드는 생명이야.

니키: 조용히 못해! 얘기 계속해 미안해.

프랭크: 블루 매직은 브랜드야. 펩시처럼 친숙한. 난 브랜드의 얼굴이야. 다들 날 믿고 사. 내가 누군지는 잘 몰라도.

니키: 뭔 소리야?

프랭크: 네가 내 약에 딴걸 섞어. 2~5%로 희석해서 블루 매직으로 파는건 상표권 침해란 말야.

니키: 내가 샀으면 내 맘대로야.

프랭크: 아냐!

니키: 새 차 개조도 불법이야?

프랭크: 블루 매직은 상품성이 완벽해. 그대로도 수익 좋은데 왜 더 욕심을 내?

니키: 그럼 이름 바꿀까?

프랭크: 그래줘야겠어

니키: 레드 매직 어때? 어감은 엿같지만 ...

프랭크: 네 맘대로 지어. 블루 개똥으로 짓든지! 날 팔아먹다 또 걸리지만 마.

니키: 걸려? 침해? 팔아먹어? '부탁해' 나 '고마워' '미안해'란 말은 모르냐? 남의 클럽에 불쑥 와서 건방지게!

프랭크: 니키.


프랭크는 블루 매직을 단순한 마약이 아닌, 소비자가 신뢰하는 브랜드로 만들었다. 그는 품질과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이 곧 시장을 지배하는 길이라 믿었으며, 이를 통해 경쟁자들을 압도했다. 하지만 동업자 니키 반스가 블루 매직을 희석하여 판매하면서 브랜드의 신뢰가 흔들리기 시작한다. 프랭크는 이를 단순한 제품 변형이 아니라 상표권 침해로 간주하며, 브랜드 가치가 훼손되면 시장 전체가 무너질 수 있음을 경고한다.

결국 그는 니키에게 제품명을 변경하도록 강요한다. 이 사건은 브랜드란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 소비자의 신뢰를 기반으로 형성되는 시장의 자산임을 보여준다. 강력한 브랜드는 차별화된 품질뿐만 아니라, 철저한 관리와 보호가 필요하다. 프랭크가 시장을 장악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단순히 좋은 제품을 만들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 제품이 가진 신뢰를 끝까지 지켜냈기 때문이었다.




아메리칸 갱스터 속 프랭크 루카스는 단순한 범죄자가 아니라, 시장 구조를 변화시키고 이를 통제하는 전략가였다. 그는 기존의 비효율적인 유통망을 무너뜨리고, 직접 공급망을 구축하여 원가를 혁신적으로 낮췄다. 또한, 경쟁자들과의 관계를 조율하며 단순한 독점자가 아닌 시장 자체를 설계하는 존재로 변모했다. 하지만 시장을 장악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그는 블루 매직이라는 브랜드를 통해 소비자의 신뢰를 구축했고, 이를 훼손하려는 시도를 단호하게 차단하며 브랜드의 가치를 보호했다. 이는 단순한 이익 경쟁이 아니라, 시장의 질서를 유지하고 통제하는 과정이었다.

이러한 전략은 범죄 세계뿐만 아니라, 합법적인 비즈니스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효율적인 공급망 구축을 통한 저비용, 독점적 지위의 활용, 그리고 철저한 브랜드 관리는 오늘날에도 강력한 경쟁력의 원천이다. 시장을 지배하는 것은 단순히 제품을 많이 파는 것이 아니라, 유통을 통제하고, 경쟁의 룰을 만들며, 신뢰를 유지하는 것이다. 결국, 진정한 승자는 제품을 파는 사람이 아니라, 시장 자체를 설계하고 장악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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