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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몽과 MCP

존재의 구조를 다시 묻다

by 김영빈


총몽(Battle Angel Alita, Gunnm)은 기시로 유키토가 창작한 SF 만화로, 인간의 뇌를 제외한 모든 것이 기계로 대체된 미래 세계를 배경으로 한다. 주인공인 전투 사이보그 '갈리(Alita)'는 머리만 남기고 몸의 구석 구석이 교체되며 반복적으로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기도 하고, 다시 구성해나가며 모험을 이어나간다.

총몽은 "뇌가 나인가? 기억이 나인가? 아니면 내가 지금 무엇을 할 수 있는가가 나인가?"라는 질문을 반복해서 던진다. 작품은 뇌보다 몸이 더 중요할 수 있다는 실존주의적 주장을 묘사하며, 특히 몸의 구조와 기능이 곧 존재의 본질을 구성한다는 테마를 내세운다. 즉, 정체성은 고정된 기억이나 판단 능력이 아닌, 행동 가능성과 구조적 특성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MCP(Model Context Protocol)는 LLM 기반 시스템에서 도구 사용을 제어하기 위한 구조적 인터페이스이다. 기존은 시스템을 모델(LLM 추론기), 클라이언트(사용자 입력/출력 및 컨텍스트 유지), 서버(도구 실행기)의 3구조로 설명한다. 하지만 이 3구조는 실제 구현과 존재론적 사고에 모두 한계를 가진다. 특히,

도구에 대한 정의(정체성)가 부재하며,

모델은 교체 가능하므로 본질이 될 수 없고,

클라이언트가 모든 흐름을 떠안지만 명확히 분리되지 않는다.

이에 따라 4구조 모델이 제안된다.

추론 서버(기존 모델)는 상황을 해석하고 도구를 사용할지 결정하는 역할을 한다.

실행 서버(기존 서버)는 실제 동작을 수행한다.

클라이언트는 입력과 출력을 관리하고 컨텍스트를 유지하며 흐름을 제어한다.

마지막으로 메니페스트는 각 도구의 정의와 정체성을 담고 있는 구조적 설계도이다.


이 구조를 총몽의 존재론적 해석과 비교해보면 다음과 같다. 추론 서버는 판단을 수행하는 뇌에 해당한다. 하지만 총몽에서는 뇌마저도 몸을 기준으로는 반복적으로 교체되 듯, 이는 존재의 본질로 여겨지지 않는다. 실행 서버는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장기나 팔, 도구와 같다. 클라이언트는 감각과 기억을 통합하고 행동을 수행하는 몸 전체, 즉 실질적인 주체에 해당한다. 그리고 메니페스트는 나를 나답게 규정짓는 전투기술, 설계도, 혹은 기억 패턴과 같은 요소에 대응된다. 총몽은 뇌(브레인칩)가 아니라 몸 전체, 그리고 그 몸이 어떤 구조로 설계되었는가가 곧 존재라고 말한다. 이 해석은 MCP의 핵심에서 클라이언트와 메니페스트가 진정한 시스템의 주체이며, 모델과 서버는 기능적 요소일 뿐이라는 주장으로 연결된다.

정체성이란 무엇인가? 단지 과거의 기억인가, 현재의 판단 능력인가, 아니면 무엇을 실행할 수 있는가? MCP의 구조를 통해 보면, 모델은 판단을 수행하지만 언제든 교체 가능하고, 실행 서버는 수동적이다. 반면 클라이언트는 전체 컨텍스트를 유지하고, 모델을 호출하며, 도구 실행을 결정하고 결과를 통합하고, 사용자에게 결과를 되돌려주는 실질적 제어자이다. 여기에 더해, 메니페스트는 시스템의 정체성을 규정짓는 설계도로 작용한다. 이 메니페스트에 어떤 도구가 정의되어 있고, 어떤 스키마와 조건을 따르느냐에 따라 시스템이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이 결정된다. 따라서 MCP 시스템의 본질적 정체성은 클라이언트의 컨텍스트 흐름과 메니페스트의 구조적 정의, 이 둘에 의해 규정되며, 모델은 이를 지원하는 수단에 불과하다.


총몽이 보여주는 실존주의적 비판은, 우리가 흔히 '머리'라고 여기는 판단 기능이 존재의 본질이 아님을 말해준다. 그보다는 몸이라는 구조, 기능, 정의된 행동의 총합이 곧 '나'이다. MCP 시스템 역시 마찬가지다. 모델은 언제든 바뀔 수 있다. 실행기는 단순히 지시된 일만 수행한다. 정체성은 클라이언트가 가지고 있는 흐름과, 메니페스트에 정의된 구조에서 나온다. 기억의 소유와 실행 능력의 조율이 주체라면, 그 주체는 클라이언트이며, 그 철학적 뼈대는 메니페스트다. 그러므로, 머리는 장식일 수 있다. 총몽은 우리가 설계하는 시스템의 구조에 실존적 반성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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