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경제의 크기는 어떻게 결정되는가
신용이란 단순히 돈을 빌릴 수 있는 자격이 아니라, ‘이자를 갚을 수 있는 능력’을 뜻한다. 다시 말해, 신용은 미래의 소득에 기반한 약속이며, 이 약속은 이자라는 가격을 통해 평가된다. 개인이 대출을 받을 수 있는 한도는 그의 신용에 따라 결정되며, 이는 통상적으로 일정한 계수를 통해 계산된다. 거시적으로 보면 한 사회의 성인 1인당 평균 신용을 추산할 수 있고, 여기에 전체 성인 수를 곱하면 그 사회 전체가 보유한 신용자본의 규모를 가늠할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 신용자본의 총량이 실물의 크기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컨대 금융시장에서 거래되는 자산의 총액이나 대출 총액은 실물 자본의 생산 능력이나 인프라의 규모보다 훨씬 클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실물 그 자체가 아니라, ‘미래에 갚을 수 있다’는 믿음, 즉 신용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인구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그것은 곧 경제가 감당할 수 있는 신용자본의 최대치, 다시 말해 한 국가의 신용경제의 잠재적 규모를 의미한다. 물론 경제의 성숙도나 소득 수준에 따라 성인 1인당 평균 신용은 달라질 수 있지만, 원칙적으로 인구가 많다는 것은 더 많은 신용자본이 형성될 수 있는 기반을 뜻하며, 반대로 인구가 줄어든다는 것은 국가 전체의 신용자본이 축소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문제는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 많은 국가들은 과거의 신용 팽창기를 거치며 대규모로 화폐를 공급해 왔다. 이 화폐는 신용자본의 성장을 전제로 유통되었지만, 이후 인구가 감소하거나 정체되면서 신용자본은 점차 줄어들기 시작한다. 그러면 이미 공급된 화폐량과 실제 신용자본 간에 괴리가 생긴다. 이 괴리는 경제 전체의 자산 가격을 비정상적으로 떠받치는 힘이 되고, 그 결과 버블의 원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즉, 이 불일치는 그 자체로 버블은 아니지만, 버블이 형성되고 붕괴되는 조건을 만들어내는 구조적 원인이다.
그렇다면 인구 감소 국면에서 이러한 괴리를 해소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인가? 선택지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인구를 증가시키는 방법. 둘째, 인구당 신용을 높이는 방법이다.
첫 번째 방법은 출산율을 높이거나 이민을 유입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운 선택지다. 대부분의 국가가 출산율 제고에 실패해왔고, 이민 정책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행될 경우 사회적 갈등과 정책 실패로 이어지기 쉽다. 결국 인구 증가 전략은 실행 속도가 느리고 불확실성이 크다는 한계를 가진다.
반면 두 번째 방법은 상대적으로 빠르고 확실하다. 이율을 낮추면 더 많은 금액을 빌릴 수 있게 되고, 이는 더 큰 신용으로 간주된다. 마찬가지로 임금이 상승하면 상환 능력이 올라가고, 이는 곧 신용의 증가로 이어진다. 이처럼 산업 내 임금 상승과 금융시장 내 금리 인하는 즉각적인 신용 창출 수단으로 작용할 수 있으며, 화폐 공급량과의 괴리를 메우는 데 효과적이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전제가 있다. 신용의 확대는 ‘보통 사람들’의 신용을 높이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단순히 평균 신용이 상승한다고 해서 전체 신용자본이 회복되는 것은 아니다. 만약 신용의 확장이 특정 고소득층이나 자산가들에게만 집중된다면, 그것은 신용자본의 양적 확대가 아니라 신용의 편중으로 이어진다. 그 결과 불평등은 심화되고, 대다수 인구는 여전히 낮은 신용 상태에 머무르게 되며, 결국 인구 감소와 맞물려 신용자본의 실제 총량은 줄어드는 역설적인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이는 일종의 <<평균의 함정>>이다. 전체 신용자본은 단순한 평균값이 아니라 분포의 문제이기도 하다. 소수의 신용이 아무리 높아져도 대다수의 신용이 제자리라면, 경제 시스템이 감당할 수 있는 신용 기반은 확대되지 않는다. 따라서 신용 확장의 방향은 정책적으로도 분산을 유도하는 구조를 가져야 하며, 실질 임금이 중하위 계층까지 골고루 상승하고, 금리 인하의 혜택이 특정 집단에 집중되지 않도록 설계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인구당 신용이 전체적으로 증가하게 되고, 신용자본도 실질적으로 회복될 수 있다.
더불어, 신용자본을 너무 빠르게 확장하는 것에 대한 경계도 필요하다. 신용은 ‘갚을 수 있는 능력’이라는 실질적 기반 위에 성립되며, 이 능력이 충분히 성장하지 않은 상태에서 신용이 과도하게 팽창하면 자산 시장에 거품이 형성되고, 가계·기업 부채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까지 쌓이게 된다. 이러한 구조는 단기적 성장 후 급격한 조정과 경기 침체로 이어질 수 있으며, 이는 2008년 금융위기와 같은 역사적 사례를 통해 이미 반복적으로 입증되었다. 즉, 신용 팽창은 실물 생산성과 균형을 이루어야 하며, 중앙은행과 정부는 그 속도와 폭을 정교하게 조율해야 한다.
요컨대, 신용자본의 회복은 반드시 인구 증가에 의존할 필요는 없다. 인구당 신용을 올리는 방법은 더 빠르고 실현 가능하며, 거시적으로 더 효과적인 수단이다. 그러나 그것은 특정 계층에 집중되어선 안 되며, 실질적인 분배와 생산성 향상, 그리고 부작용에 대한 제어 장치와 함께 병행되어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줄어드는 인구 속에서도 지속 가능한 신용경제의 복원이 가능해진다. 이제 정부가 바라봐야 할 것은 출산율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의 신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