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이제는 씩씩한 사람이랍니다
너무 슬퍼서 세상에서 사라지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 다 괜찮아질 거라 생각했다. 분명 시간은 상처를 아물게 했다. 하지만 시간은 변화를 만들어낼 뿐이었다. 지우개처럼 깔끔히 지우진 못했다. 상처는 그렇게 흉터가 됐다. 형태 없이 눈물로 범람하던 마음은 어느새 마르고 응축되어 단단한 바위처럼 굳어버렸다. 그리고 어딘가 짐처럼 자리를 잡았다. 더 이상 마음속을 헤집어 놓진 않았지만 무겁게 어느 한 곳을 누르고 있었다.
그렇게 기울어진 마음 때문에 비틀거렸다. 시간 속에서 변한 건 오직 나뿐이었다. 여전히 세상은 흘러가고 있었다. 비틀거리며 그 틈에 나를 밀어 넣는 건 어려웠다. 속도를 맞추는 것도 방향을 찾는 것도 비틀거리는 몸으로는 힘들었다.
결국 한껏 탈진해 버렸다. 균형을 잡는 것도 권태로웠다. 이제는 너무 지쳐서 세상에서 사라져도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과거에 힘차게 바랬다면, 나중에는 놓아버린 쪽에 가까웠다.
통원 치료로 표적 항암을 할 때가 생각난다. 부작용이 적은 항암 과정이라곤 했지만 고통이 없진 않았다. 특히 손발의 통증으로 힘들었다. 매일 아픈 발을 절뚝이며 병원에 갔다. 도착해서는 2시간 정도 항암제를 투약하고 끝나면 다시 발을 절며 집에 왔다. 발이 너무 아팠다. 주삿바늘에 그만 찔리고 싶었다. 그리고 지금은 시작에 불과하고 앞으로 치료 일정이 많이 남아있었다. 처음엔 다 참을만했지만, 고통이 일상이 되면서 점점 지쳐갔다.
몸도 마음도 너무 지친 날이 있었다. 어김없이 그날도 병원을 가는데 의문이 생겼다.
'나는 왜 병원에 가고 있지?'
'나는 왜 부르튼 발로 이 길을 걷고 있을까?'
'나는 왜 고통으로 향하지?'
'나는 왜 고통이 예정된 삶을 사는 거지?'
답을 할 수 없었다. 머릿속에 대답 없이 물음으로 가득 찬 순간, 내 삶이 고통으로 점철되어 버린 것 같았다. 길에서 울어버리고 싶었다. 속상했지만, 나만큼은 대답을 해줘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스마트폰을 꺼내 의문들을 메모해 뒀다.
착잡한 마음에 생각이 많았다. 그날은 2시간이 어떻게 갔는지 모르겠다. 늘 병원을 오가는 건 힘들었지만, 그래도 집에 갈 때는 조금 나았다. 귀가는 더 이상 아픈 발로 걷지 않아 된다는 안도감, 오늘 하루치 고통은 끝났다는 해방감을 의미했다. 그래서 집에 가는 길은 조금 더 힘이 났다. 그날도 비슷한 기대를 하며 귀가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문득, 내가 기특했다. 처음엔 아픈 발로 낑낑대며 계단을 다 오른 내가 기특했다. 지금은 별거 아닌 계단이지만, 점점 발이 아파지던 그때는 작은 성취감도 느껴질 정도로 힘들었다. 그리고 그 계단이 병원을 나가는 길에 있다 보니 오늘도 무사히 치료를 마쳤는 느낌을 줬다.
또 암울한 상황에서 작은 기대를 하는 내가 기특했다. 안도감과 해방감을 느끼고 기대하는 내가 좋았다. 몇 시간 전 울고 싶었던 길에서 나 스스로를 치켜세우고 나니 고양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아까 적었던 메모 어플을 켜서 그 아래에 메모를 이어갔다. "그렇지 않아" 이렇게 시작했다.
나는 그 너머를 향하고 있는 거야. 그 길에 고통이 있을 뿐이야.
나는 결코 고통을 목적지로 걷고 있는 게 아니야.
나는 고통 그 너머로 가고 있는 중이야 경유지 같은 거지.
그러니 영원하지 않을 거야.
예전에는 한 사람에게 큰 사건이 일어나면 그만큼 큰 변화가 빠르게 일어날 줄 알았다. 이야기 주인공이 가까운 사람을 잃은 후 각성하는 게 내가 쉽게 떠올린 장면이다. 그런데 적어도 나는 그렇지 못했다. 나에게 변화란 매우 느리고 더딘 일이었다. 큰 사건을 겪어도 말이다.
스스로를 저주하고 미워해서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쌍하고 미안한 그런 양가적인 감정도 들었다. 내가 과연 나를 사랑할 수 있을까 하는 불가사의한 의문도 물음도 자주 물었다. 그럼에도 내가 나를 사랑해야 할 텐데 하는 막막한 의무감이 더 힘들게 하기도 했다. 옥신각신 나와 다투다 보니 차곡차곡 무언가 쌓였다. 어느새 조금은 초연해졌다.
나와 동행하는 지독한 고통이 싫었다. 변하려고 하기도 하고 다 포기하고 그대로 있으려고 하기도 했다. 그렇게 차곡차곡 몸부림이 쌓이면서 평행선인 것 같던 각도가 조금 달려졌다. 그렇게 그대로인 것 같은 두 선의 간격도 조금씩 멀어져 갔다.
그때 메모장에 이어 적은 내용들이 희망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분명한 고통 속에서 희망을 떠올린 내가 좋다. 그 기특함을 잊지 않는다. 이제는 언제가 다시 고통이 찾아와도 그 기억으로 나를 다시 끄집어내 줄 나를 확신한다.
장마가 갔다고 하더니 요즘 다시 비가 옵니다. 이번 주 내내 비가 올 거라고 합니다. 장마가 다시 왔다고 해요. 오늘도 비가 소식대로 왔고, 하루 종일 흐립니다. 낮인지 저녁인지 모호합니다. 무채색 하늘이 공기가, 차분하게 만드는 것 같기도 합니다.
무채색 가득한 하늘을 보고 있자니 상실의 기억들이 떠올라요. 기억하시죠? 빼앗겼던 것들 말이에요. 요즘은 운동을 배우고 있어요. 운동도 고통스럽기는 마찬가지인데 떠오른 기억과 다르게 채워지는 기분이 들어요. 그리고 상실의 그것들이 다시 회복되는 기분도 들어요. 이 기분은 치사하게 마냥 좋지만은 않아요. 내가 채워지고 있다는 뿌듯함만 느낀다면 좋았을 텐데, 그렇게 단순하면 덜 피곤했을 텐데 말이죠. 조금 더 일찍 했더라면 어땠을까- 하고 그림자 같은 생각이 따라옵니다. 그래도 괜찮아요. 상실은 과거의 머물고 지금 나는 확실히 채워지고 있으니까요. 장마가 그치고, 하늘이 개이면 무채색 공기는 사라질 거예요.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면 어색한, 이 흐린 날은 기억에도 없을 거예요. 그때는 가득 채워진 나만 가을의 낯선 하늘을 바라보고 있을 거예요. 그러니 괜찮아요.
[25년 여름, 18년 겨울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