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독서일기

28. 세기말 하모니

이토 게이카쿠의 「세기말 하모니」를 읽고

by 띠띠리따띠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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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이토 게이카쿠의 작품을 처음 접한 건 고등학생 무렵이었습니다. 근처 서점에서 그의 데뷔작 「학살기관」 을 구입해서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9.11테러 이후 디스토피아의 풍경을 그린 이 작품은 곧장 저를 매료시켰습니다. 세계 각지에서 벌어지는 분쟁과 테러, 신선하게 다가왔던 언어학적 논의, 그리고 충격적인 마무리까지, 모든 점이 제 마음에 쏙 들었습니다.


그 후로 게이카쿠의 다른 작품들도 읽어보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2009년 3월 32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사망해버렸고, 한국에 정발된 장편소설들은 절판된지 오래였습니다. 아쉬운 마음을 삭히면서도 그의 이름과 「학살기관」 이라는 작품만큼은 반드시 기억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때 당시에 한국에선 막 SF 붐이 일어나고 있었지만, 사람들 사이에서 이토 게이카쿠의 이름이 거론되는 일은 없었습니다. 뛰어난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언급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 저를 의아하게 만들었습니다. 분명 그의 작품은 우리나라에서 출간된 대부분의 SF 소설들보다 훨씬 뛰어난 재미와 통찰을 담고 있다고 생각되는데 말이죠.


오늘 저는 게이카쿠의 유작 「세기말 하모니」 의 독후감을 쓰면서, 이제는 잊혀져버린 어느 한 작가의 이름을 다시 거론해보려고 합니다.


전 인류를 혼란과 두려움으로 몰고 간 '대재앙' 이후, 사회는 의료 합의 공동체, 소위 바이가먼트가 지배하게 되면서 극단적으로 안전과 건강만을 추구하게 됩니다. 이 사회에서 어른이 되면 몸 속에 워치미를 삽입해 모든 생체 데이터를 바이가먼트에 제공하고, 그에 대한 대가로 메디케어가 제조한 알맞은 약과 코디네이터가 짜준 건강 프로그램에 따라 건강하고 안락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또한 생명주의 사상의 등장으로 사람들은 극단적일 정도로 생명을 존중하고 타인을 배려하게 되죠.


혼란 이후 만들어진 유토피아 속에서, 일본에 사는 세 명의 소녀, 미히에 미야하와와 레이카도 키안, 키리에 투안이라는 이름의 세 소녀는 동반자살을 시도하기로 결심합니다. 하지만 미야하를 제외한 나머지 두 소녀는 실패하게 되고, 소녀들은 그 사건을 철없던 얼치기 시절의 추억으로 남겨두고 성장하게 됩니다.


그로부터 13년후, 세계 보건 기구 소속 나선 감찰관이 되어 세계의 분쟁지역을 떠돌던 투안은 사소한 잘못을 계기로 일본에 돌아오게 됩니다. 오랜만에 만난 키안과 함께 레스토랑에 식사하던 중, 갑자기 키안이 나이프로 자기 목을 그어 자살해버리고, 같은 시각, 전 세계에서 6,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동시에 자살을 시도하는 사태가 벌어집니다. 이 일의 배후에 이미 죽은 미야하가 있다고 짐작한 투안은 사태의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그녀를 찾아나서게 됩니다.


이상이 「세기말 하모니」 의 대략적인 줄거리입니다. 테러와 감시, 내전으로 혼란스러운 세계의 모습을 그려낸 전작 「학살기관」 과 달리, 이번에는 그와 대비되는 극도로 평화로운 세계 속을 그려내보입니다. 인간을 질병과 노쇠에서 구원해낸 바이가먼트 사회의 모습은, 언뜻 보면 인류가 추구해야할 이상적인 유토피아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동전의 양면처럼, 유토피아의 반대편에는 항상 디스토피아가 새겨져 있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효과적인 안전과 건강을 빌미로 시민의 생체 데이터를 수집하고 통제하는 바이가먼트 사회가 정말 유토피아인지는 여전히 의문입니다.


작품에서 제기하는 테마는 '자유의지' 입니다. 작중 설명에 따르면 의지란 인간이 가진 욕구들이 서로 합의해 만들어내 합의체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식욕, 성욕, 수면욕 등 다양한 욕구 속에서 인간은 늘 혼란스러워하며 선택하기를 강요받습니다. 이미 모든 개인의 생체 정보가 공개되고 관리되는 사회에서, 인간에게 더 이상 의지가 필요할까요? 의지는 인간에게 본래부터 주어진 고유한 특성이 아닌, 그저 효율적인 진화를 위한 동물적인 본능에 불과하기에 극도로 체계화되고 분업화된 사회에선 도리어 방해물에 지나니 않을지도 모릅니다.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나' 라는 자의식이 해체되게 된다면, 그 순간에도 인간은 스스로를 인간이라 부를 수 있을까요? 인간이란 무엇일까요? 이런 질문들이 떠오르지만, 제 빈약한 사고로는 도무지 답을 낼 수가 없네요. 앞으로 차차 공부하면서 알아가야겠죠.


올해로 이토 게이카쿠가 사망한 지 16년이 흘렀습니다. 이제는 모두가 잊어버린 한 천재의 이름이 더 널리 알려지길 바라며, 글을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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