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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모님 면전에서 차마 못한 이야기들,공부(2)

해야 하는 공부를 하고 싶은 공부로 만드는 동력

   사춘기에 접어들며 공부를 잠시 내려놓는 아이들을 생각해 보았다. 친구가 좋아지고, 외모에 눈길이 가고, 유행을 좇고 싶고, 여가생활에 관심이 높아지고 등의 이유가 있겠지만 공부의 목적이 막연하고 그 종착점이 너무 멀리 느껴지는 것도 한몫하는 것 같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겠지만 어떤 일을 지속해 나감에 있어서는 '꾸준한 동력'이 필요하다. 직장인에게는 월급날이 그럴 것이고 자영업자에게는 거래처의 입금일이 그럴 것이다. 때로는 관계가 동력이 되기도 하는데 부모에게는 사랑스러운 자녀가 가장 큰 동력이 되고, 물론 그 반대 크기와 같진 않겠지만 자녀에게도 부모의 지지와 격려가 동력이 된다. 

  아이들이 학교를 다니고 수업을 들으며 공부를 본인의 과업으로 당연히 받아들이게 하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학원 같은 별도의 교육을 추가로 받는 것, 게다가 공부의 과정을 즐겁게 받아들이는 것, 더 나아가서 그 공부가 은 성취로 이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다. 이것을 어른 입장으로 바꾸면 정해진 근무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싫은 소리 내지 않고 즐겁게 일하면서 다른 사람보다 높은 성과를 내 월급은 똑같이 받아야 한다는 말과 비슷하다. 근무시간을 넘어서는 일에는 추가수당 또는 추가된 시간을 넘어서는 연차지급 등 동력이 될만한 다른 것들이 마땅히 따라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른은 당연하게 생각하는 동력을 아이들에게는 지급하지 않거나 때로는 잘못된 동력을 제공하는 일도 허다하다. (그리고 사실 아이들은 기계가 아니라서 아무리 훌륭한 동력을 제공한다 해도 각자가 지닌 최고효율의 임계치를 넘어설 수 없다.)

   이미 일반화되었으니 어느 정도의 사교육을 아이들의 당연한 과업이라 여기는 것도 경계할 필요가 있다. 아이들을 사교육으로 내몬 사회를 탓하고 입시나 교육제도를 핑계대기 전에 별도의 교육 없이도 스스로 잘하는 학생 있고 아무리 쏟아부어도 역효과를 보이는 학생이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교사로 근무하면서 제일 안타까운 일 동력을 잃은 아이들을 만날 때다. 우스갯소리처럼 여겨지겠지만 아이들의 학업 역량은 롤러코스터처럼 빠른 속도로 정신없이 오르락내리락하기도 하기에 나는 아이들에게 공부를 가르치는 것만큼이나 스스로 공부를 지속해 나가게끔 돕는 '건강한 동력'을 제공하기 위해 힘쓴다. 아이들에게 가장 건강한 동력이 자존감이라는 것에는 대부분의 교사와 학부모가 동의할 것이다. 거기에 더해 내가 자존감만큼 중요한 동력으로 생각하는 것은 '어떤 어른이 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다. 

  사춘기 이후부터는 아이들에게 비판적인 사고가 자리 잡는다. 비판적 사고가 부정적으로 자리 잡으면 주변인과 마찰이나 갈등을 빚지만 비판적 사고를 바탕으로 한 발전적인 고민은 아이들에게 건강한 동력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과 '어떤 어른이 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눈다. 진로교육을 할 때도 훌륭한 직업인에 대한 소개를 가장 중요하게 다루는데 어떤 일을 하느냐보다 그 일에 세상에 미치는 긍정적인 가치를 느끼는 것이 훨씬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런 맥락으로 아이들과 처음 만나는 3월 2일에는 나에게 가장 큰 감동을 준 한 직업인에 대해 소개를 한다. 그 사람은 바로 칠레의 건축가이다.

  아이들과의 첫 만남에서 내가 들려주는 이야기...



 여러분! 공부해서 어떤 사람이 되면 좋을까요? 여러분 모두가 생김새가 다르듯 20~30년 후 각자가 하게 될 일이 다양할 것입니다. 연구에 따르면 여러분이 살 미래에는 한 사람이 일생을 통해 가지게 될 직업이 8개가량 된다고 하더군요. 정말 어마어마하지 않나요? 선생님은 고작 하나의 직업만 경험했는데 여러분은 8개라니!! 그런데 어떤 직업을 가졌는가 보다 중요한 것은 그 직업이 다른 사람에게 주는 영향력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한 사람을 소개해주려고 합니다. 그는 바로 2016년 건축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칠레 건축가 아라베나입니다. 건축계의 노벨상을 받은 이 사람은 과연 어떤 건축물을 지었을까요?  

  여러 의견이 많았는데 그가 지은 건물의 이름은 '좋은 집의 절반'입니다. 그는 30년 된 빈민가에 100 가구가 살 집을 짓는 도시재건 프로젝트를 맡았습니다. 한 가구당 10 평남짓의 땅이 배정되고, 건축비는 우리 돈으로 75만원입니다. 이 일을 맡으려는 건축가는 별로 없었을 것 같아요. 왜냐면 너무나 터무니없이 적은 돈이기 때문이지요. 아마 이 건축가가 턱없이 부족한 예산에 맞추어 대충 판잣집을 짓거나 천막집을 지었더라도 그를 손가락질할 사람을 한 사람도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아라베나는 한참 고민했어요. 이곳에 살 저소득층 가구가 어떻게 하면 중산층으로 올라갈 수 있을까?라는 고민 말이에요. 그리고 고민 끝에 그는 가장 기본적인 수요에만 맞춰 단순하게 방을 만들고 나머지는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스스로 만들 수 있도록 열어두었습니다. 사진처럼 최소한의 구조물만 만들고 나머지는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확장할 수 있게 한 거예요. 말 그대로 짓다가 만 '반쪽짜리 집'이지요. 그리고 이 반쪽짜리 집으로 그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하게 됩니다.

  이 집에 살게 된 가족은 아마 반쪽짜리 집을 보며 열심히 살아갈 희망을 발견했을 거예요. 첫 달에는 페인트를 사서 외벽을 칠하고, 다음 달에는 커튼을 사서 달고, 집이라는 공간과 함께 열심히 살아갈 의지도 다졌을 겁니다. 그리고 어느 날에는 벽돌로 빈 공간을 메워 새로운 방도 하나 얻을 수 있었을 거고요. 처음부터 멋진 집을 지은게 아니라 그곳에 살 사람들이 멋지게 완성할 수 있는 '반쪽짜리 집'을 지은 건축가가 건축계의 노벨상을 받은 것입니다. 

   이렇게 대단한 사람이 되라는 의미는 아니에요. 다만 여러분이 하고 있는 공부 그리고 여러분이 하는 말과 행동이 여러분의 삶과 주변에 끼치는 영향력을 고민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은 교실에서도 이런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습니다. 선생님이 일일이 검사하지 않더라도 내 자리니까 내 주변을 정돈하는 것, 조금 더 아는 내용이 있다면 어려워하는 친구에게 친절히 설명해 주는 것, 굳이 내가 하지 않아도 되지만 내가 함으로써 모두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 어렵지만 함께 배워나가며 조금씩 발전해 나가는 것.. 이런 것들이 선한 영향력의 시작입니다. 여러분이 이런 자세로 생활한다면 어디에 있든 어떤 직업을 갖든 주변을 밝히는 빛나는 사람이 되겠죠. 선생님 또한 그런 고민을 하며 여러분을 가르치려 합니다.


자녀에게 건강한 동력을 제공하고 싶은 학부모님께 전하고픈 이야기

자녀에게 가장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 첫 번째이자 마지막 선생님이 부모님입니다. 

부모님이 어떤 말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는지 자녀는 의식하지 않아도 다 배우고 익힙니다. 

'아직 어려 괜찮겠지? 좀 떨어져 있으니 안 들리겠지?'라고 방심하시는 사이에도 보고 듣고 배웁니다. 

직업인으로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통해 아이는 성실을 배웁니다.

퇴근 후 힘들지만 가족을 챙기는 모습을 통해 아이는 인내와 희생을 배웁니다. 

힘든 일을 부모님이 함께 처리해 나가는 과정을 보며 협력을 배웁니다.

본인의 의견을 경청하며 대화해 주는 부모님을 보며 존중을 익힙니다.

부부 사이에 의견이 다르더라도 건강하게 조율하는 모습을 보고 아이는 경청과 배려를 배웁니다. 

어른으로서 바람직한 모습을 보여주시는 것도 좋지만 부족한 모습을 보여주시되 발전하는 모습을 함께 보여주시는 것도 중요합니다. 어른도 어른을 통해 배우기 마련이니 주변의 훌륭한 어른의 모습을 아이에게도 전해주세요.

자존감이 높은 것도 중요하지만 자존감만 높아서는 부족합니다. 주변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비판적 시각과 함께 따뜻한 시선도 함께 길러주세요. 

이런 것들이 쌓이다 보면 어느 순간 제 스스로 동력을 일으키며 본인 삶의 중심을 스스로 잡아나가는 모습을 보여줄 겁니다. 

가끔 아이들에게 말합니다. "공부는 머리 좋은 사람이 잘하는 것이 아니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하고자 노력하는 사람이 결국 잘하게 되는 것이다."라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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