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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모님 면전에서 차마 못한 이야기들,공부(1)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

  초등 고학년을 맡았을 때 3월 2일에 내가 아이들에게 꼭 하는 말은 '공부'에 대한 이야기다.

  고학년쯤 되면 공부가 본인의 의지로 착착착 움직이기 보다는 '이미 바다에 들어왔으니 파도에 몸을 맡기는거지' 정도가 되고, 파도가 일렁이며 바닷물 몇 번 마시다보면 속이 울렁이고 육지로 나오고 싶어지듯 친구와의 놀이, 스마트폰, 유행, 과도한 학습량이나 학원 재시험으로 인한 몇 번의 좌절은 공부에 대한 외면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의지가 없는 아이가 몇 명만 되어도 교사의 가르침에 상당한 영향을 끼치는데..

그럴 때 수업하는 나의 기분은 어릴 적 외양간을 탈출한 송아지를 잡으러 방천을 뛰어다니던 그때를 떠올리게 한다. 한참 실랑이하다 기진맥진할 때쯤 겨우 송아지를 잡았는데 목줄을 잡아끄는데도 네 발로 버티며 그 크고 맑은 눈으로 '안갈테야! 놔줘! 가기 싫어~'라고 대치하던 그 순간 말이다.

내 몸이나 송아지나 덩치는 별반 차이 없었고 송아지의 다리가 무척 가늘고 힘없어 보였기에 송아지 잡는 일쯤 아무렇지 않을거라 생각했지만 외양간에 갇히기 싫어 버티는 송아지의 눈을 바라보니 매정하게 줄을 잡아채기도 미안했다. '어미소는 말을 잘 듣는데 얘는 왜이렇게 시도때도 없이 탈출을 꿈꾸나?' 그땐 막연히 궁금하기만 했는데.. 몸은 함께 하지만 정신은 이미 교실 밖을 떠난 아이들을 보면 그 송아지 생각이 난다.

교실 밖을 떠난 아이들의 정신을 불러오는 것도 나의 일이고 한번 나간 정신은 시간이 지나면서 더 자주 더 멀리 나가는 법이기에 나는 3월에 가장 많은 에너지를 갈아넣으며 공부의 기초를 다진다. 어떤 공부는 힘들긴 하지만 언젠가 쓰일 수 있고 어떤 공부는 약간 재미 있고 어떤 공부는 기다려지고 어쨌든 지금 하는 공부가 본인의 삶에 중요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함께 하는 공부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도록......

  

고학년을 맡은 3월 2일 개학식날 첫 시간에 내가 하는 말...


여러분은 공부를 왜 해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뚜렷한 목표없이 부모님이 시키니까, 남들 다 하니까 같은 이유로 공부를 하고 있진 않나요? 만약 명확한 꿈과 목표가 있고 그 목표를 위한 작은 실천의 일환으로 공부를 하는 사람은 정말 행운아입니다. 공부를 즐길 줄은 아니까요. 하지만 여러분 나이에 뚜렷한 목표를 갖기는 쉽지 않지요. 지금은 진로에 대해 탐색하는 단계이기 때문에 여러 직업에 대해 알아보고 나의 장점과 특성에 맞는 직업세계에 대해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훌륭합니다. 만약 여러분의 꿈과 목표실현에 공부가 별로 필요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물어볼게요. 공부를 뛰어넘는 재능을 여러분은 갖고 있습니까? 여기서 공부를 뛰어넘는 재능이란 다른 사람이 그 재능에 기꺼이 비용을 지불할 수 있을만한 재능입니다. 손재주가 좋은 사람은 자신만의 독창적인 상품을 만들어 판매하여 수익을 올릴 수 있겠지요. 운동을 잘하는 사람은 국가대표 운동선수로 높은 연봉을 받으며 그라운드를 누비겠지요. 하지만 여기 두 가지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첫째, 재능을 가진 사람도 그 재능을 꾸준히 계발하기 위해 공부 이상의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발레리나 강수진과 축구선수 박지성의 발을 떠올려보세요. 고된 연습과 훈련으로 이미 상처투성이가 된 발.. 그리고 또 한가지, 재능을 가진 사람들은 재능만으로 성공할 수 없습니다. 손재주가 좋은 사람은 소비자와의 소통을 통해 그것을 판매로 이어야 합니다. 운동선수는 배려,협력을 기본으로 하는 팀플레이에 능해야 하지요. 골문을 향해 골을 몰고 있는 내가 골욕심을 버리고 나보다 유리한 위치에 서있는 동료에게 골을 패스해야만 훌륭한 선수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처럼요. 단적인 예로 여러분이 가는 병원을 생각해보세요. 여러분은 좋은 대학을 나온 의사선생님을 찾아갑니까? 나의 아픔을 공감해주고 보듬어주는 친절한 의사선생님을 찾아갑니까? 당연히 두번째겠지요. 우리가 일년동안 함께 할 공부는 단지 책을 읽고 문제를 풀고 남들보다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함이 아닙니다.

함께 읽고, 비판적으로 생각해보고,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내 나름대로 지식을 구성해가는 것, 그래서 배우는 과정에 즐거움을 느끼고 여러 공부들 중 나의 관심 분야를 발견하고 그와 관련한 새로운 정보를 찾아보며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것이 진짜 공부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혼자가 아니라 함께 할 때 더욱 빛이 나겠지요. 이것은 하루이틀 사이에 되는 것이 아니기에 우리는 매일매일 우리의 친밀한 관계 속에서 열심히 공부할 것입니다. 이게 진짜 선생님과 여러분이 함께 할 공부입니다.




아이들이 이 말을 얼마나 완벽히 이해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3월 2일은 담임교사를 처음 만난 날이라 이 날만큼은 아이들의 눈빛이 그 어느 때보다 초롱초롱하고, 나 또한 지독한 안구건조증을 이겨내며 눈을 120% 크게 뜨고 설명하기에 저 이야기가 3월 아들의 공부태도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함은 분명해 보인다.

아이들이 교실에 들어오며 처음 느낀 나의 첫인상이 여성스러운 옷차림에 한껏 쳐진 눈으로 웃어주는 '착한 선생님'의 이미지였다면 저 이야기를 하는 나는 '큰 입으로 카리스마를 분수처럼 솟아내는 모습'일테니 상반전 매력 더 큰 효과를 발휘할지도 모를 일이다. ㅎㅎ


자녀의 공부에 관심이 적은 학부모님 면전에서 하고픈 말

어머니~ 아버지~

아이의 의식주를 책임지느라 때로는 힘들고 때로는 보람되며 또 때로는 별 생각없이 주어진 일을 하시는 것처럼 이 시기의 아이들에게 공부는 본인들의 과업입니다.

생의 시기마다 본인이 해야할 과업이 있고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끔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아이들이 성취 정도의 결과를 떠나 본인의 현재 과업을 게을리하지 않는 것, 지금 게을리하면 그 댓가를 언젠가 스스로 치러야 함을 아는 것, 열심히 하는 것이 조금 힘들기도 하지만 그 속에서 보람을 느끼기도 한다는 것, 친구와 함께 하는 공부의 중요성을 아이들이 서서히 배우게 해주세요.

공부라는 경험을 통해 '무언가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배우게 되고 이런 경험이 모여 나중에 본인의 목표를 위해 노력을 기울이는 동시에 어려움도 참고 이겨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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