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성의 혼란!? <2>

by 자백






사람을 한번 그려 보라기에 나는 '졸라맨'을 그렸다. 나에게 그림은, 누구나 그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보다 타고난 센스가 있어야 한다는 입장이라, 단순히 그리기 어려운 걸 떠나서 고역이라 할 정도다. 그런 나에게 사람을 그리라 하면 어김없이 '졸라맨'을 그린다. 그림을 다 그리자 상담자 선생님은 질문지를 나누어 주셨다. 4번째인가 5번째 질문이 사람은 남자입니까? 여자입니까? 하는 질문이었다. 나는 졸라맨은 그냥 졸라맨이기 때문에 성별을 특정할 수 없다고 말하자! 선생님은 친절하게 말씀해 주셨다.


당신은 정체성이 혼란스럽군요!!


두둥!! 순간 당황스럽고 황당했다. 이어서 많은 질문이 쏟아졌다. 결혼은 했는지, 했다면 아이가 있는지, 지금 하고 있는 일은 어떤 일인지, 마지막에는 우울증 약을 복용한 적이 있는지 물었다. 나는 최대한 친절히 대답해 주었고 다른 이들은 말없이 고개 숙인 채 기다려야 했다. 공기는 탁했고 나른했다. 두 시간여 집단상담이 끝으로 나는 다음 상담을 취소했다.


성별에 대한 질문이었으니 성 정체성이 혼란스럽다는 말이었을까? 아니면 고유한 존재인, 오랫동안 일관된 모습으로 살아온 실체로써의 정체성을 말했던 걸까? 알 수 없지만 찝찝하지 않을 수 없다. 분명한 건 나는 이성을 좋아하는 남성이고 내 이름 석자를 인식하고 사고, 감정, 생각, 행동, 편견, 고정관념 등 나를 충분한 책임을 지려고 노력하는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ooo이다.


집에 오는 길에 곰곰이 생각했다. 2회 상담이 끝나면 내가 얻는 건 무엇이었을까? 상담자가 얻는 건 무엇이고, 내담자가 얻는 건 무엇일까? 그 자리에서 정말 솔직했을까? 상담 후가 더 불편해지지 않았을까? 조금이라도 자신에 대해 위안이 됐을까? 당신은 이렇고 또 당신은 저렇고, 동의할 수 없다는 다른 내담자의 눈빛을 상담자는 알고 있었을까? 확신에 가지지 못한 채 '~그런 것 같아요'라는 애매모호한 말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물론 심층 상담이 아니기에 높은 확신이 부족했을지 몰라도 A4용지 한 장이 나를 말해줄까?





다양한 심리검사 및 기법을 통해 내담자의 정보를 수집한다. 그 과정에서 질문을 통해 스스로 답을 찾아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상담의 목적이라 생각한다. 영화 ' 굿 윌 헌팅'을 좋아한다. 숀(로빈 윌리엄스) 같은 상담자를 사뭇 기대한 내 판단도 분명 있다. 다양한 심리검사 및 상담, 방향과 목적에 따라 내담자의 깊은 이면의 모습을 끄집어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프레임이 정해진 상태에서 즉, 답이 정해진 상태에서 편하게 마음을 열어 이야기할 내담자들은 없다고 생각한다.


지자체에서 어떤 취지로 했는지는 나는 모르겠다. 단발성으로 연중행사 구색 맞추는 프로그램이라면 안 했으면 한다. 특히 목적이 분명한 지역 청년의 정신건강을 위한 것이라면, 그것이 곧 건강한 지역사회를 만드는 것이라면 더더욱 고민을 해야 하지 않을까? 돈을 많이 들여 여유 있는 상담이면 좋겠지만 과연 어느 누가 쉽게 받을 수 있을까? 담당 공무원의 고충과 지자체의 지원 내용이 어디까지인지 모르지만, 단순히 참여인원 채우기에 급급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리가 내는 세금이다.


상담자의 작은 말실수였을지도, 나의 예민함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사회는 온갖 프레임으로 우리를 압박하고 구속한다. 조금이라도 의견이 다르면 공동체에서 밀어내고 심지어는 매장시키기도 한다. 내 차량은 붉은 바탕에 검정선이 들어가 있다. 색을 고를 때 '특이한 색을 좋아하시네요'라는 말을 들었다. 뭐가 특이하다는 건지. 단순히 차 외관 모양과 잘 어울리고, 내가 좋아하는 색을 선택했을 뿐인데 특아하다니.


틀렸다가 아니라 다름이라는 말을 우리는 자주 듣고 사용하는데, 그렇다면 생활 속에서 실천은 잘하고 있을까? 나도 살아온 세월만큼 쉽게 바뀌지 않는 편견이 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나를 인정하 듯 타인도 그대로 인정하려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갑자기 뒤집 듯 바꾸려 하면 하기도 싫고 부작용도 한 번에 올까 하는 생각에, 내가 있는 위치에서 작은 실천(예 : 여성스럽다, 남성스럽다 사용 안 하기)을 하면 좋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예시처럼 특정 짓는 단어나 개념을 사용 안 한다. 그냥, 잘 어울리고 너답다 라거나 있는 사실 그대로 표현을 해준다. 지금은 익숙하지만 바뀌기까지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기에 잘 실천하고 있다.

때론 어렵다고 느낄 때도 있지만, 내가 할 수 있을 만큼 해보고 싶다.


p.s 무조건 반대를 위한 반대는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작가의 이전글정체성의 혼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