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또 하루가 가고 있어

부산에서 맞는 크리스마스, 히꼬의 하루

by 동남아 사랑꾼


카톡에 지인들의 “메리 크리스마스” 메시지가 하나둘 뜬다.


눈 대신 비가 내리고, 바람은 괜히 더 세다.

아파트 7층 정원으로 난 문틈 사이로

“쌩—” 하는 쉰 바람 소리가 복도로 밀려 들어온다.

부산의 크리스마스는 늘 이렇게 소란스럽다.


히꼬의 하루는 이른 새벽부터 시작된다.

평소보다 한참을 참고 있었던 똥과 오줌을

비 오는 정원에 차례로 쏟아내고는

손살같이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일 년 내내 기온 변화가 거의 없는

초가을 같은 날씨의 멕시코시티에서 태어나

몇 년을 보낸 녀석이다.

한국의 겨울을 벌써 세 번이나 겪었는데도

여전히 낯설고 불편한 모양이다.

비가 오고 바람이 부는 날이면

그 표정이 더 또렷해진다.


속이 가벼워진 히꼬는

집에 오자마자 본능 스위치가 켜진다.

아마도 한때 넓은 초원에서

양을 몰았을지도 모를

그 DNA의 질주 본능일 것이다.


빨간 고무공을 내 발앞에 툭 굴려놓고

아침 공놀이를 하자는 신호를 보낸다.

그 애원하는 눈빛에

결국 나는 또 공을 집어 든다.


내가 조종을 잘해

그의 앞에 공을 적당히 띄워주면

히꼬는 점프하며 두 발로 받아낸다.

자기 키를 넘겨 공이 지나갈 때면

마치 포효하듯 달려들어 낚아챈다.

개에게도 아드레날린이라는 게 있다면

바로 저 순간일 것이다.

기쁨에 찬 괴성이 집 안에 울린다.


한참을 뛰어놀고 나서야

지친 히꼬는

집사람이 큰맘 먹고 크리스마스 선물로 사준

뉴질랜드산 양의 뼈다귀에

온 정신을 빼앗긴다.


그 틈을 타

집사람 곁으로 슬쩍 다가가면

히꼬는 뼈다귀를 문 채

어느새 내 앞에 보이지 않는 경계선을 긋고

작게 어르렁거린다.

그의 세계에서 나는 늘

조금 뒤에 서 있는 존재다.


매일 새벽,

내 첫 일과는 히꼬를 데리고 나가

똥오줌을 시키는 일이고,

집에 와서는 출근 전 축구 파트너가 된다.

퇴근 후엔 다시 한 차례,

잠자기 전에도 또 한 번.

운동도 시켜주고, 야외 배설도 시켜주지만

나는 언제나 2인자다.


2인자면 어떤가.

그가 있어 집에는 늘 기척이 있고,

부산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집사람도

히꼬 덕분에 나와 함께 이곳에 머문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저 세상에 계신 우리 엄마가 이 모습을 보시면

“팔불출 다 됐네” 하실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이게 사는 거 아닌가 싶다.


크리스마스지만

여느 날과 다르지 않은

소소한 하루다.

“그래, 또 하루가 가고 있어.”

나는 그렇게

혼잣말을 하며

부산의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있다.


그때 또 하나의 메시지가 온다.

상하의 나라 지인의 문자 멧시지다.

“메리 크리스마스.”


"그래,

나도 메리 크리스마스"

부산의 하루는

이렇게 또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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