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대의 첫 해돋이
키는 조금씩 작아지고,
근육은 조용히 빠져나가고,
정신은 가끔씩 안개를 두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음만은
해마다 조금씩 더 여유로워진다.
나이 듦의 특징이 올해도 어김없이 나타날 것이다.
욕실 거울 앞에 서면
이런 실존적 나를 한눈에 마주하게 된다.
지난주가 아니라,
엊그제 외웠던 숫자와
방금 전까지 또렷하던 일들이
메모장을 열어야만
“아, 그렇지” 하고 되살아난다.
뇌가 조금씩 작아지고
기억이 느려진다는 사실을 알기에
나는 여전히 매일 아침
외국어를 공부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쓴다.
쇠퇴를 막겠다는 의지라기보다
지금의 나와 조금 더 오래 동행하고 싶다는 마음에 가깝다.
새해 첫 아침,
아파트 창가에 서서
해운대 쪽 하늘을 바라본다.
고층 빌딩 사이로
천천히 떠오르는 태양이
유리창에 부딪혀
잠시 눈부신 빛을 남긴다.
대단한 감동은 아니지만
그래도 오늘이
어제와는 다른 하루일 거라는
조용한 예감은 든다.
새해 첫 태양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태운 바다 한가운데 유람선과 조그마한 배들이 바다위 바위처럼 여기저기 떠 있다.
배에서 일출을 볼 영유가 없는 사람들은 해운대 해변 모래사장에 모여있다.
집사람이 평생 바다에서 알출을 보긴 처음이라며 아파트 거실 소파 의자에 올라가고 또 창문에 코를 대고 해변과 바다에 있는 사람들이 품고있을 새해의 소망을 주문하고 있는 듯하다.
아들 둘과 작년에 태어난 손녀 그리고 며느리의 안녕을 빌었을지 모르겠다. 옆에있는 남편과 히꼬를 위한 그의 소망도 있는지도 모른다.
해변을 걷는다.
해운대 모래 위로
파도가 밀려왔다가
아무 일 없다는 듯 물러난다.
발밑에서 사각거리는 모래 소리,
겹겹이 쌓였다가 지워지는 물결의 흔적.
삶도 어쩌면 저렇겠지 싶다.
밀려오고, 물러가고,
그 사이에 남는 것은
조금씩 다져진 발자국 하나.
내 몸과 정신은 청춘으로 돌아갈 수 없고, 솔직히 돌아가고 싶지도 않다.
다만 새해가 되면 늘 하나쯤은 다짐을 꺼내 놓는다.
조금 더 여유로워지기 위해서,
나 자신에게,
내 가족에게,
그리고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조금 더 넉넉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다.
그래서 올해도 이렇게 적는다.
첫째, 독서하기와 글쓰기.
읽고 쓰는 일은 여전히 나를 가장 나답게 만든다.
둘째, 외국어 공부하기.
언어는 세상을 바라보는 창이자
내 사고의 근육이다. 또한 정신줄 잡기, 다른 쉬운말로 치환하면 치매예방에 최고가 아닐지 싶다.
셋째, 숲과 나무를 보기.
숲을 보고, 나무를 보고,
그 안에서 나 자신의 속도를 다시 맞추기.
올해는 오래 마음에 두었던
숲해설가 과정을 등록했다.
상반기에 시험을 통과하면
하반기부터는 지금 내가 일하고 있는 이곳에서 숲해설 자원봉사를 하며
자연을 더 자세히 관찰하고,
그 과정에서
내 마음의 결도
조금씩 들여다볼 생각이다.
그리고 마지막 하나.
넷째, 괜찮은 어른 되기.
이제 내 나이도 60대 중반이다.
완벽한 어른은 아니어도
누군가에게는
잠시 기대어도 괜찮은 사람,
말 한마디와 침묵 하나의
무게를 아는 어른.
해운대 바다처럼
매일은 아니어도
결국 다시 밀려오는
희망을 믿으며.
2026년의 나는
그렇게 한 걸음만 더 가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