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벽두의 커피 한잔

트럼프의 베네수엘라 침공을 들으며

by 동남아 사랑꾼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이른 아침이다.

창문 밖 해운대 바다는 아직 밤에 머물러 있고, 고층 아파트에서 흘러내린 불빛들이 수면 위에서 조용히 일렁인다. 파도 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바다는 분명 거기 있다.


히꼬는 늘 그렇듯 가래떡 같은 걸 한 덩이 싸고 나서야 하루를 시작한다. 공을 몇 번 차고 나면 꼭 뭔가를 물어야 직성이 풀리는지, 알록달록한 인형을 입에 문 채 나와 집사람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집사람 얼굴에도 말없이 번지는 흐뭇함이 있다. 말보다 표정이 먼저 아침을 연다.


모닝 커피 한 잔은 이제 완전히 루틴이 되었다. 모모라 원두를 갈 때 퍼지는 고소한 향이 집 안을 채운다. 커피 포트의 물이 요란하게 끓는다. 소리가 큰 걸 보니 뚜껑을 제대로 닫지 않은 모양이다. 집사람의 잔소리가 나오기 전에 얼른 일어나 뚜껑을 꼭 닫는다. 집사람은 아무 말은 없지만, ‘잔소리할 일이 줄어드는 것도 발전’이라며 혼자 속으로 자만하는 듯하다.


커피를 내리며 NPR 뉴스를 켠다.

1월 3일, 트럼프의 베네수엘라 공습. 마두로 대통령 부부를 체포해 미국 내 재판에 세운다는 소식이 다른 국제 뉴스들과 나란히, 담담한 어조로 흘러나온다. 마치 수많은 사건 중 하나인 듯, 뉴스는 감정을 싣지 않는다.


치외법권적 행동, 석유 이권, 정권 이양, 그리고 ‘안정을 위한 통치’까지. 트럼프식 먼로주의의 민낯이 더는 숨겨지지 않는다.


우리는 지금 다자주의가 저물고, 힘에 의한 각자도생의 무질서가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시대에 들어선 듯하다. “우아한 위선의 시대에서 정직한 야만의 시대로” 넘어왔다는 말이 과장이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국제법 원칙에 어긋난다는 지적에도 세계는 조심스럽다. 트럼프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는 듯, 말들은 둥글다. 물론 브라질, 중국, 이란, 북한 같은 반미 국가들은 비판의 목소리를 낸다. 북한은 단거리 미사일까지 쏘았다. 무슨 심사인지 짐작은 가지만, 이것 또한 익숙한 장면이다. 할리우드식 액션처럼 반복되는.


미국이 중남미(서반구)를 ‘앞마당(backyard)’으로 여겨온 먼로주의의 전통은 여전히 살아 있다. 트럼프가 지난해 12.5 국가안보전략서(NSS)에서 중남미를 최우선 지역으로 지목한 것도, 이번 베네수엘라 공습도 그 연장선에 있다. 겉으로 내세운 명분은 마약 문제지만, 석유 에너지, 중국과 러시아의 영향력 차단, 반미 정권에 대한 경고라는 계산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 뒤따른다.

베네수엘라 석유를 미국 기업이 장악하면 국제 유가가 내려가고, 이는 곧 미국 내 물가 안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에게는 꽤 매력적인 선택지일 것이다.


마두로 정권이 차베스 이후 나라를 곤궁에 몰아넣고 인권 침해가 극에 달했다는 점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해서 주권 국가를 공습하고, 대통령을 체포해 자국 법정에 세우는 일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트럼프는 민간 정부가 출범할 때까지 ‘안정을 위한 통치’도 가능하다고 공언한다. 침공은 성공했을지 몰라도, 통치는 또 다른 문제다. 이라크와 리비아, 아프가니스탄, 그리고 더 멀리는 베트남전의 기억이 겹쳐진다. 미국 사회를 오래 괴롭혔던 베트남전 신드롬은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역사는 반복되지 않지만, 리듬을 탄다”는 마아크 트윈의 말이 문득 떠오른다. 경고처럼, 아니 체념처럼.


커피가 식어간다.

향기롭고 고소했던 커피가 어느새 쓰다.


신년 벽두, 마음을 평정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커피는 마신다. 히꼬는 인형을 놓지 않고, 바다는 여전히 창밖에 있다. 세계는 요동치지만, 아침은 이렇게 또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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