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롯 4를 보며

운칠기삼(運七技三)인가, 운구기일(運九技一)인가

by 동남아 사랑꾼


나는 트롯을 좋아한다.

머리가 복잡하고 마음이 어수선할 때면 꼭 하는 게 두 가지 있다. 하나는 드라마 몰아보기, 다른 하나는 트롯 모음 틀어놓기다. 트롯 1이 처음 방송됐을 땐 본방 사수까지 했는데, 요즘은 그렇지 않다. 시간 날 때 재방을 보거나, 내가 좋아했던 곡을 AI가 “취향 저격”이라며 추천해 주면 그때 눌러본다. 세상 참 편해졌다.


트롯을 보고 듣다 보면 늘 같은 생각이 든다.


세상에는 정말 숨은 고수가 많구나.

그리고 가수가 뜨고, 인기를 얻는다는 것이 실력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는 확신도 함께 든다.


흔히들 ‘운칠기삼(運七技三)’이라 한다. 운이 70이고 실력이 30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요즘 세상을 보면 그 비율을 조금 더 상향 조정해야 하지 않나 싶다. ‘운구기일(運九技一)’쯤은 돼야 현실을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드는 건 나만의 착시일까, 아니면 다들 속으로는 알면서도 말하지 않는 진실일까.


오랜 공직 생활을 하며 나는 한 분야의 전문가라는 이름으로 살았다. 인연도 소중히 여기며 오래 이어왔고, 남들 눈에는 과분해 보일 자리에 앉기도 했고, 하고 싶은 일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돌아볼 때 “충분하다”고 느낀 적은 거의 없었다. 늘 부족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동남아와 아세안에 내 커리어의 절반 이상을 바쳤고, 그 덕에 전문가라는 평가도 받았다. 하지만 은퇴 후 한 발짝 물러서서 세상을 다시 보니, 문득 이런 의문이 든다.

과연 나는 그때, 표면 위와 표면 아래에서 동시에 움직이던 국내외의 흐름을 정말 다 알고 있었을까.


이런 생각이 나만의 과민함은 아니었나 보다. 작년 말에 나온 송민순 전 외교장관의 책 '좋은 담장, 좋은 이웃'을 읽으며, 비슷한 고백을 발견했을 때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그 순간, 조금은 위로를 받았다.


트롯 시리즈가 시청률을 위해 산파조 같은 서사를 의도적으로 만들어낸다는 걸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런데도 어느 순간, 나는 그 서사에 슬쩍 현혹돼 눈물을 훔친다. 나이 탓도 있겠지. 그 모습을 본 집사람은 가볍게 놀리듯 한마디 던지지만, 나는 개의치 않는다. 울고 나면 마음 한구석에 쌓여 있던 슬픔이 정화 과정을 거쳐 빠져나간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트롯 시리즈는 실력은 있지만 뜨지 못했던 이들에게 주어지는, 드문 무대다.


세상은 여전히 ‘운구기일(運九技一)’처럼 보이지만, 그래도 나는 믿고 싶다. 최소한 인간 세상에서는 운칠기삼(運七技三) 정도는 된다고.


트롯 프로그램의 상업성을 알면서도 내가 이 시리즈를 계속 보는 이유도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이 무대를 통해 단 한 명이라도 더, 진짜 실력자가 빛을 보는 장면을 보고 싶은 마음. 그 작은 희망이, 트롯 4를 또 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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