잎을 배우다

동백섬에서

by 동남아 사랑꾼

동백섬에서, 잎을 배우다

집사람이 서울에 올라가고, 나는 하루 휴가를 내어 강아지를 돌보게 되었다.

이왕 바깥으로 나온 김에 동백섬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햇빛은 환히 내리쬐는데, 바람은 제법 차다.


최치원이 세상을 등지고 가야산에 들기 전, 이곳 해운대에 들러 안개 낀 바다 풍경에 감탄하며 ‘해운대(海雲臺)’라 새겼다 하지 않았던가. 오늘은 안개 대신 눈부신 윤슬이 바다 위에 흩어져 있다. 그러나 파도는 거칠다. 방파제에 부딪히는 소리가 바람을 타고 묵직하게 들려온다.



동백섬 산책길에는 떨어진 동백꽃이 붉은 점처럼 흩어져 있다. 한때 탐스럽던 꽃들은 많이 졌고, 가지에 남은 것들도 조금은 시들하다. 계절은 그렇게 다음 장으로 넘어가고 있다.


잎을 본다는 것


초보 숲해설가가 된 뒤로는 걷는 방식이 달라졌다.

예전엔 꽃을 봤고, 색을 봤고, 풍경을 봤다.

요즘은 ‘구조’를 본다.


길가에 떨어진 동백잎 하나를 집어 들었다.

두툼하고 윤기 나는 잎. 그 작은 세계 안에 세 개의 이름이 숨어 있다.


잎자루. 잎맥. 잎몸.


잎자루는 줄기와 잎을 이어주는 다리다.

잎맥은 수분과 영양분이 흐르는 길이다. 잎맥은 가운데 줄기인 주맥과 잔가지인 청맥으로 이루어진다.

잎몸은 햇빛을 받아 생명을 빚어내는 넓은 무대다.


2년 전 여주 집에 심어둔 화살촉나무를 떠올렸다. 가을이면 빨갛게 물들고, 흰 꽃 뒤에는 열매가 주렁주렁 맺혔다. 그저 “예쁘다” 하고 지나쳤던 단풍잎을 어느 날 앞뒤로 뒤집어 보았다. 줄기와 연결된 잎자루, 잎맥이 뻗어 있는 결, 넓적한 잎몸이 선명히 보였다.


그 순간, 잎은 단순한 ‘모양’이 아니라 ‘구조’가 되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


이 용어들은 『숲에서 인생을 배우다』에서 처음 배웠다.

처음엔 조금 낯설고, 굳이 이렇게까지 구분해야 하나 싶었다. 그러나 알고 나니, 보이는 것이 달라졌다.


예술이 그렇듯, 숲도 아는 만큼 보인다.


잎자루를 보면 연결을 생각하게 된다.

잎맥을 보면 흐름을 떠올리게 된다.

잎몸을 보면 햇빛을 품는 너그러움을 느끼게 된다.


사람도 다르지 않다.

누군가는 겉모습만 보고 지나치지만, 조금 더 들여다보면 각자의 잎맥과 잎자루가 있다. 어디에 연결되어 있고, 무엇을 통해 영양을 받고, 어떤 방식으로 세상과 빛을 나누는지


바람이 분다.

파도 소리는 여전히 거칠다.

윤슬은 반짝인다.


떨어진 동백잎 하나를 손에 쥐고 서 있으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꽃이 지고 나서야 우리는 잎을 본다.

화려함이 지나가고 나서야 구조를 본다.


오늘 동백섬에서 나는 풍경보다 ‘구조’를 배웠다.

그리고 그 구조 속에서 나를 본다.


잎자루처럼 누군가와 이어져 있고,

잎맥처럼 보이지 않는 흐름 속에 살아가며,

잎몸처럼 햇빛을 받아 나만의 색을 빚어내는 존재.


히꼬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동백은 지고 있지만, 잎은 여전히 푸르다.


아는 만큼, 보인다.

보이는 만큼,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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