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따와 자기 성찰 사이에서
3월의 해운대 바다는 잔잔하다.
파도는 크게 일지 않고, 바람은 아직 차지만 봄의 기운을 품고 있다. 그런 바다를 바라보고 있으면 평소에는 스쳐 지나가던 생각들이 조용히 떠오른다.
문득 외로움과 고독은 무엇이 다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말장난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둘은 분명 다른 결을 가지고 있다.
외로움(loneliness)은 남과 단절되어 혼자 남겨졌다고 느끼는 상태다.
주관적인 감정이다. 사람들 속에 있어도 외로울 수 있고,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을 수도 있다.
학교나 직장에서 흔히 말하는 왕따도 외로움의 한 모습이다.
당사자가 어떤 빌미를 주었든 아니든, 사람들 사이에서 밀려나 혼자가 되면 외로움이 생긴다.
‘나는 외톨이다’라는 감각, 세상과 조금 떨어져 있다는 느낌 말이다.
하지만 외로움의 문턱은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왕따라는 사실조차 모르고 살아가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작은 일에도 스스로 왕따라고 느끼며 깊은 외로움에 빠진다.
대체로 내성적인 사람은 외로움을 더 자주 느끼고,
외향적인 사람은 사람들과 어울리며 그 감정을 덜 느끼는 편이다.
그렇다고 외향적인 사람에게 외로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군중 속에 서 있다가 문득 “왜 이렇게 혼자인 것 같지?”하는 순간을 누구나 한 번쯤은 겪는다.
또 어떤 때는 삶의 충격이 외로움을 넘어 고독으로 우리를 이끈다.
가족이나 친구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을 때,
우리는 인생의 의미를 다시 묻게 되고, 그 질문 속에서 혼자 서 있게 된다.
그렇다면 고독(solitude)은 무엇일까.
외로움이 사회적 왕따라면
고독은 자발적 왕따에 가깝다.
사람들 사이에서 밀려난 상태가 아니라
스스로 한 걸음 물러나 자신을 바라보는 시간이다.
남들과 떨어져 있지만, 그 속에는 자기 성찰이 있다.
그래서 역설적이게도
외로움은 마음을 소모시키지만
고독은 마음을 깊게 만든다.
가끔 이런 생각도 든다.
우리는 왜 “외로운 죽음”이라고 하지 않고
“고독사”라는 표현을 쓸까.
논리적으로 보면 외로운 죽음이 더 자연스러운 말 같다.
하지만 일본어 번역에서 들어온 표현이 굳어지면서
사회적으로 홀로 죽음을 맞이하는 상황을 모두 고독사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언어는 종종 논리보다 습관을 따라간다.
그렇다면
외로움을 고독으로 바꾸는 방법은 무엇일까.
아마 특별한 방법은 없을 것이다.
좋은 스승을 만나는 것,
한 권의 책을 깊이 읽는 것,
낯선 길을 여행하는 것,
조용히 명상하는 것,
그리고 자연을 만나는 것.
그런 순간들 속에서
외로움은 조금씩 가라앉고
고독은 서서히 깊어진다.
지금 눈앞에 펼쳐진
해운대의 봄바다를 바라보며
나는
외로움보다는
고독에 가까운 감정을 느낀다.
파도는 조용히 밀려왔다가 다시 물러가고
그 사이에서 마음도
조금 더 깊어지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