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micron 코로나
해운대 새벽 바다를 바라보다 문득 6년 전 일이 떠올랐다.
오늘 서울에서 멕시코 근무 시절 함께 일했던 직원들을 만나기로 했다. 그중에는 코로나에 걸려 나와 함께 중환자실에 입원했던 후배도 있다. 이제 해외로 나간다며 환송 모임이 잡혔다.
그 소식을 듣자 자연스레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리고 문득 궁금해졌다.
그때 병실에서 느꼈던 생각과 다짐들이 지금의 나에게는 어떤 의미로 남아 있을까.
2020년은 누구에게나 잊기 어려운 해다.
나에게는 특히 그렇다.
2020년 12월 15일부터 25일까지, 멕시코시티의 Hospital Español에서 코로나로 입원했다. 중환자실을 거치며 보낸 열흘 남짓의 시간이었다.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그 시간은 내 삶을 돌아보게 한 긴 사색의 시간이기도 했다.
몸은 고통스러웠지만 그 속에서 몇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어쩌면 평생 바쁘게 살아오며 미처 느끼지 못했던 것들이었다.
첫째, 소소한 일상의 소중함
우리는 흔히 ‘소확행’이라는 말을 쉽게 쓴다.
그러나 병실에 누워 보니 그 말의 의미를 비로소 가슴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평범한 하루.
아무 일 없는 일상.
가족과 함께 밥을 먹는 시간.
그 모든 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그때 처음 절실하게 느꼈다.
둘째, 건강과 가족
가족 카카오톡 방에서 무뚝뚝한 작은 아들이 처음으로 이런 말을 했다.
“사랑한데이. 아프지 마세요.”
평생 처음 듣는 말이었다.
그 짧은 문장을 읽는 순간 가슴 깊은 곳에서 뜨거운 것이 밀려왔다.
건강이 무너지면 모든 것이 흔들린다.
그리고 그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결국 가족이다.
셋째, 사람과 세상을 보는 태도
병실에 누워 있으니 그동안 내가 주변을 어떻게 바라보며 살아왔는지도 돌아보게 되었다.
세상에는 옳고 그름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다름이 존재한다.
혹시 나는 내 기준과 내 잣대로 주변 사람들을 판단하며 살아온 것은 아니었을까.
그 생각이 오랫동안 마음을 붙잡았다.
넷째, 병실 감옥에서의 작은 자유
병실은 가로 세로 3×4미터 남짓한 작은 공간이었다.
그 안을 몇 걸음 걸어 다니는 것조차 작은 자유처럼 느껴졌다.
문이 열릴 때마다 보이는 의료진의 분주한 일상,
창밖으로 보이는 초록색 나무와 그 너머의 멕시코 하늘,
하루 일을 마치고 총총걸음으로 귀가하는 의료진의 모습.
그 모든 것이 나에게는 부러운 자유였다.
그때 처음 깨달았다.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누리던 일상이 얼마나 큰 자유였는지를.
다섯째, 삶의 방향에 대한 질문
병실에 누워 있으니 또 하나의 질문이 떠올랐다.
그동안 나는 혹시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살아온 것은 아닐까.
세상에서의 성취와 출세를 좇아 너무 바쁘게 달려온 것은 아닐까.
“이만하면 됐다”는 생각을 머리로만 하고
마음으로는 여전히 경쟁 속에 서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병실에서 나는 그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철학자 Friedrich Nietzsche는 인간이 천박한 이기심을 넘어 관계 속에서 자신을 극복할 때 진정한 행복에 이른다고 했다. 그는 그런 인간을 ‘초인’이라 불렀다.
그런 초인이 내 마음속에도 있는지,
그리고 우리 시대에도 그런 인간이 있는지
나는 병실에서 조용히 생각했다.
병실에서 세운 다섯 가지 다짐
그 열흘의 시간은 내게 몇 가지 다짐을 남겼다.
첫째, 건강을 지키며 살자.
죽는 날까지 병원 신세를 지지 않는 삶을 살도록 노력하자.
둘째, 병원과 주변에서 봉사하며 나눔의 삶을 실천하자.
셋째, 조금 양보하고 약간 손해 보며 살자.
넷째, 언제나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사람을 바라보자.
다섯째, 무엇보다 가족 중심의 삶을 살자.
병실에서의 시간은 힘들었지만 헛된 시간은 아니었다.
그곳에서 나는 다시 한번 삶의 방향을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인생에서 가장 큰 깨달음은
아주 작은 공간에서 찾아오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오늘,
그때 함께 병실에 있던 후배를 다시 만나러 서울로 간다.
그 시간들이 우리 삶 속에서 어떤 의미로 남아 있는지, 조용히 확인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