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2.19은 눈이 녹아서 비나 물이 된다는 절기상 '우수'다. 여주는 어젯밤부터 내린 비가 오늘 아침까지 이어지다가 막 그치고 자욱한 안개가 집 앞에 펼쳐진 밭과 이어진 야산까지 안개띠를 하며 산등성의 윤곽조차 보이지 않는다.
어젯밤 꾼 개꿈의 후유증이 가시기도 전에 자욱한 안개를 보니 이게 현실인가, 환상인가 싶을 정도로 몽롱한 아침이다. 아침부터 모바일 폰에 독수리 타법으로 긁적이는 데 히꼬가 연신 공을 입에 물고 공 던지기 하자고 한다. 모르는 척하면 애법 날카로워진 발톱으로 허벅직 위를 박박 긁어서 할 수 없이 공을 던저주고 글쓰기를 한다.
우린 살면서 좋고 기분 좋은 꿈도 악몽을 꾼다. 좋은 꿈은 재미있는 개그를 듣고 나면 금세 잃어버린 듯 아침에 눈 뜨면 뭔가 좋았던 꿈인데도 기억하기가 쉽지 않다. 최소한 나는 그렇다. 내가 태어난 날, 고시가 된 날 등 좋았던 때는 내 꿈에 보단 우리 엄마 꿈에 나타났다. 내 꿈에도 나타났지만 까먹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악몽은 다르다. 너무나 선명해 야밤에 깨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를 확인하며, 꿈이라서 안도할 때가 종종 있었다.
살면서 3번 정도 악몽을 꾸웠다. 그 이상 일 것 같은데 내가 기억하는 악몽이 그렇다.
첫 번째 악몽은 군대 다시 가는 꿈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대한민국 남성들은 다 그런 악몽을 꾼다. 그런 나는 젊은 날 많은 욕망이 억압되고 자유롭지 못한 상황에 대한 절망감 때문에 좌절했고, 다시는 군대 안 가겠다고 무의식 중에 꽂혀 자주 꿈에 나왔을지 싶다. 한 때 그런 시달림도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슬그머니 살아졌다.
다음 악몽은 대학 졸업 후 고시 준비하며 꾼 연거픈 낙방의 악몽이다. 그것도 근소한 차로 떨어지며 안타까워하던 꿈속의 나 자신이다. 운 좋게 적절한 때 고시에 통과했으나 순간순간 스트레스는 엄청나서 그런지 직장 생활 후 최소 20여 년 이상은 낙방의 꿈을 꾸웠다.
세 번째 악몽은 현재 진행형이다. 은퇴해 자유인으로서 이런저런 프리랜스의 인생 2막을 열어가고 있으나 어젯밤처럼 가끔 악몽을 꾼다. 내 신발을 잃어버려 맨발로 있는 안타까운 꿈이다. 오랜 직장 생활의 후유증인가 싶기도 하다고 내 나름의 해몽을 한다. 그래서인지 난 상갓집이나 모임에 갈 때 악몽의 되새기며 내 신발을 구석진 곳에 잘 둔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비싼 구두는 안 신는다. 꿈속에서 처럼 누가 가져갈까 봐 걱정돼 서다. 이쯤이면 정신과 상담이 필요할지 모르나 내방식 대로 현재 진행형 악몽을 마주한다.
오늘 밤엔 그리운 엄마의 꿈이면 좋겠다. 히꼬가 쓸데없는 허툰 짓 그만하고 공을 던지라고 코 받고 나를 쳐다본다. 우리 히꼬는 어젯밤 좋은 꿈을 꾸었나 하고 생각해 본다. 난 우수의 여주 아침을 이렇게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