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니 바깥이 온통 눈세상이다. 저만치 보이는 인왕산이며 빌라 단지 내 나무, 자동차와 지붕 위에 눈이 소복소복 쌓였다.
사람이나 자연도 우수를 지나 봄을 기다리는데 '봄맞이에 웬 눈'인가 하며 난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이때 아들이 빨간 코에 손을 호호하며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다. 세워둔 차위에 쌓인 눈을 치우고 들어온다고 한다, 그러고 나서 밖을 보니 나이 드신 경비원이 눈 치우기 애 바쁘시다. 그분도 '웬 눈'하시는 듯했다.
싹틀 준비를 하던 나무들도 움츠려있긴 마찬가지다. 성가신 눈이 찰싹 붙어 좀 무거운 듯 스치는 바람에 눈덩어리를 틀어낸다. 우수수 눈비가 내린다.
세상사가 이렇듯 오락가락한다. 48년 미얀마가 영국의 오랜 식민 지배를 겪은 후 독립하고 그 이후 60년 넘게 군부 통치를 받고 있던 2011년부터 미얀마도 조금씩 개혁개방에 민주화의 물결이 일었고, 그때 사람들은 미얀마의 봄을 얘기했고, 나 또한 미얀마의 봄은 오는가라는 일간지 기고를 한 적이 있다. 그 이후 아웅산 수치의 등장으로 3년 전 쿠데타가 다시 일어나기 전까지 미얀마 국민들은 미얀마의 봄은 맞이했다. 그러나 또 어젯밤 눈처럼 미얀마의 봄은 다시 차디찬 겨울의 동면에 길을 내주고 있다. 미얀마의 긴 역사를 보면 봄은 찰나였고 겨울은 길고도 길었다.
때아닌 봄눈이야 곧 솟구쳐 올라오는 나무며 꽃잎의 새싹을 막지 못하고, 우린 이내 초록의 나뭇잎과 화사한 봄꽃의 봄을 맞이할 것이다. 그게 우리가 아는 자연의 섭리다.
인생살이도 그런가. 당신의 봄은 언제였고, 봄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런저런 시련의 꽃샘추위 앞에 당신은 움츠린 적은 없는가. 아직 오지 않은 봄과 새벽이 오기 전 한 치 앞이 안보인 캄캄한 어둠 속에서 느끼는 찰나의 꽃샘추위에 움츠리고 있진 않은가.
난 60여 년 살면서 불혹의 40이 지나면서 '지금이 나의 봄이야'하며 체면 걸며 지냈다. 은퇴한 이제 나이 들어 '마음 챙김(mindfulness)'을
실천하며 새로운 봄을 준비한다. 그러는 사이 몸과 마음이 허해지는 찰나의 꽃샘추위도 있을 것이지만, 난 나의 봄을 기다린다. 그리고 미얀마의 봄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