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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남아 사랑꾼 Feb 24. 2024

이 봄날의 하루가 소중한 사람

내 친구에게 기적이라는 게 있으면


눈이 내리고 난 후 다시 봄이 찾아왔다. 또 꽃샘추위가 오겠지만 오늘 이 아침 봄볕이 눈부시게 아름답다.


히꼬가 입에 공을 물고 방문을 박차고 들어온다. 모르는 척했지만 성화에 못 이겨 앞마당에 있던 고무 축구공으로 공놀이를 한다. 봄볕이 앞마당 한가득 비추고 살랑이는 바람에 처마 끝 풍경 소리가 들린다.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히꼬는 신이 나서 전속력으로 공을 쫓아 간다.


바닥의 굵은 자갈 튕기는 소리가 한적한 시골에서 울려 퍼진다. 매주 금요일마다 오는 여주에서 꼬리 치며 반겨주고 뽀뽀해 주는 그이기에 공놀이를 안 해줄 수 없다. 아직 2년이 채 안돼 저리 왕성하지만 그도 나이가 들면 집 한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주는 밥만 먹고 지나가는 행인들만 물끄럼히 바라볼 것이다.


한참을 놀아 주다 보니 뒷 울타리에 지난 한 해 자랐다 시들어 누렇게 된 칡덩굴이며 철 지난 풀들을 낫으로 베며 땀을 흘린다. 뒷산으로 이어지는 빈터가 있고, 덩쿨 밑에선 쑥이며 이런저런 파란 싹들이 자라나고 있다. 봄은 오고 있었다.


이런 봄이 누구에겐 새털같이 많은 하루이지만, 어느 병실에 있는 그 누군가지금 이 순간이 너무나 소중 유리창 너머로 오는 봄의 전령들을 담으려고 애쓴다. 어젯밤 시골 초딩 친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친구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서고 그 활발하던 친구가 몸 쓸 병이 걸려 수술을 해 잘 되었다는 소식에 작년 말에 그의 집에서 1박 2일의 소모임을 갖었다. 미리 준비해 놓은 싱싱한 회며 여러 음식을 먹고 나와 그는 둘이서 한방에서 잤다. 그다음 날  보신용으로 추어탕도 먹고 커피도 하며  모든 것을 내려놓고 몸만 챙기라고 신신당부를 하며 헤어졌다.


내가 일하는 곳과 멀지 않은 곳에 사는 그에게 올초 전화를 걸어 점심을 하자고 했더니 병원 때문에 안된다고 하였지만 그의 목소리는 여느 때와 다르지 않아 그럼 다음에 하자며 전화를 끊었다. 아마 그때쯤 이미 재발이 되어 힘들게 지냈던 모양이다. 그는 나의 초딩 친구이고 서울서 대학을 같이 다녀 자주 그의 자취방에 가서 그가 끓여주는 고향맛 된장국이며 김치찌개를 즐겨 먹던 친구다. 일머리와 돈 버는 머리가 있어 재산도 꽤 모아 좋은 외제차를 타고 넓은 집에서 아들 딸 잘 키워 한집안을 일으키며 자수성가했다.


그런데 6~7년 전부터 그의 고등학교 절친과 큰 사업 하다가 법정까지 가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나는 만날 때마다 소송 그만두고 내려놓자고 몇 번이나 얘기를 했다. 그럴 때마다 세상 물정 모르는 샌님의 이야기라고 귓등으로 듣곤 했던 그였기에, 만약 그때 멈추었으면 그의 병이 이렇게까지 악화되진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그때 좀 더 세게 밀어붙였으면 어땠을까 하는 때늦은 후회마저 한다.


의사였다가 경제학자가 된 어느 분이 인터뷰에서 통계를 돌려보니 세상 성공의 8할은 운이다라고 했다. 어느 나라에서 태어났는지, 부모가 누군지 , 어느 귀인을 만났는지 등등이다. 그럼 자기 노력이 2할밖에 안돼 나는 동의하고 싶지 않다만 어쩜 그 학자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내 친구는 어느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는데  아직도 정정한  나이에 당장 내년을 장담할 수 없다 하니 가슴이 메어진다. 그는 운이 나빠서일까.


기적이란 게 있어 인간의 재주를 넘는 자연의 치유가  남은 운을 그에게 가져다주길 나는 절절히 바란다. 그가 이 따사로운 봄볕을 더 많이 맞이하길 나는 정말로 소망한다.


하루빨리 그를 보고 50여 년의 우정을 더듬어 보려고 한다. 내가 당연시하는 이 봄날이 그에게 얼마나 소중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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