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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남아 사랑꾼 Mar 17. 2024

그래, 히꼬야, 공놀이하자

우리 집 2인자의 집착


이른 아침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밤새 오줌을 참은 히꼬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려 내방 미닫이를 금만 열어 놓았다. 히꼬가 내가 자는 척하는 나한테 기습 뽀뽀를 한다. 일어나라는 신호다.


나도 밤새 참은 소변을 보러 화장실을 열고 들어가며 문을 열어 놓은 채 볼일을 보고 있는데 히꼬는 그 사이도 참지 못해 물고 있던 테니스공 크기의 천으로 된 공을 화장실 바닥으로  냅따 던진다. 빨리 오줌 싸고 공놀이 하자는 제스처다.


수 없이 대충 옷을 걸쳐 입고 산발이 된 머리카락은 빵모자로 러쓰고 밖으로 나갈 채비를 한다. 히꼬는 먼저 현관문을 발로 찬다. 누구 닮아 저렇게 성질 급할까 싶다. 성질 급한 건 집사람 닮긴 했다. 뭐든 빨리빨리 해야 적성이 풀리는 사람이다. 히꼬는 공놀이에 미쳤다. 자나 깨나 공놀이하자고 한다. 현관문을 빼꼼히 열어 놓으면 집 뒤쪽에 짚으로 짠 카펫으로 달려가 외부용 고무 축구공을 앞에 두고 궁둥이를 바닥에 붙이고 누가 나오기를 이제나 저제나 기다린다. 그쯤 되면 우리 집 일인자 집사람이 누가 나가 히꼬하고 공놀이하라는 잔소리에 여주의 아침이 시작된다.


축구는 얼마나 잘하는지 큰 축구공을 공중으로 차면 두 앞발로 동시에 차 마치 발 배구하는 듯하고, 그의 머 너머로 공을 멀리 차면 손쌀같이 달려가 발로 드리블을 으르렁 거리며 전속력으로 온다.  신났다. 우리 둘째가 어려서부터 축구광이고 나이 30이 넘은 지금도 새벽시간의 손흥민 경기를 꼭 챙겨 볼 정도로 축구 마니아인데 히꼬가 그를  닮았는지, 아니면 전생에 차범근이 아니었는지 모르겠다. 히꼬는 2년이 채 안된 소녀지만 멕시코 태생이다. 축구 잘하는 멕시코인 DNA가 있는지도 모른다.  마누라가 히꼬는 공을 좋아하는 자폐 증상이 있다고 한 말이 떠오른다. 나도  뭐 하면 열정이니 뭐니 하면서  딴짓을 안 하니 그 점은 히꼬와 내가 닮았나 싶기도 하다.


나는 꼬에게 공을 주다가 개들과 주인들이 함께 축구시합하면 어떨까, 그러면 나도 히꼬 데리고 시합에 참가할수 있지 않을까 하는 환상적 백일몽을 잠시 꾼다. 히꼬가 공놀이할 때면 꼬리를 격하게 흔든다. 웰시 코기는 보통 꼬리를 잘라 마치 꼬리가 없는 게 정상이고, 있으면 이상하다고들 한다. 동네 산책을 하다 보면 "어, 웰시 코기인데 꼬리가 있네"라는 소릴 종종 듣는다. 과거 웰시 코기가 양이나 소를 모는 시절 꼬리가 있으면 거추장스러워 잘랐다는 이야기는 있는데 지금은 그런 일도 안 하는 려동물인데  왜 저 이 감정선이기도 한 꼬리를 싹둑 자른 게 정상이고, 안 자르면 비정상이고 이상하다고 할까. 결국 정상과 비정상 구분, 어떤 일을 좋아하는 데 자폐니 정상이니 하는 농담도 다 인간의 편견 때문은 아닌가.


나는 요새 43촌(4 서울 , 3 여주)의 생활을 한다. 여주에선 잠자고 책 읽기 중간중간에 히꼬와 공놀이로 보낸다. 마누라 잠은 서울서 자지, 왜 여기서 그렇게 자냐며 내가 분리 장애증이 있다며 심리전공자답게 개똥 진단을 한다.  나도 왜 그런지 여주에 오면 시도 때도 없이 잔다. 집사람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잠기고 있는데 히꼬가 발로 툭툭 치며 툰 생각 말고 공놀이하자고 보챈다.


 "그래, 히꼬야, 공놀이 하자" 하며 현관문을 연다. 봄기운이 느껴지는 여주의 3월 일요일 오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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