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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남아 사랑꾼 May 10. 2024

백사실 계곡 풍경

그윽한 아카시아 향기의 유혹


일주일 이상 꼬박  힘들게 동티모르와 브루나이를 다녀왔습니다. 은퇴 후 1회성 특사 자격이었. 모처럼 방문이었고, 특히 동티모르는 아세안 가입 준비 중이고, 브루나이는 올해가 '트리플 40 주년(브루나이 독립 40주년, 아세안 가입 40주년, 한국과 브루나이 수교 40주년)'이어서 의미 있는 해이기도하지요.


덤으로 현직에서 함께했던 동료들도 만나 '라' 썰을 풀면서 마치 현직 컴백의 느낌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나이는 속일 수 없는지 오늘 새벽 귀국 후 계속 골아떨어지다 몸을 추스르려고 집 근처 백사실 계곡을 오릅니다. 산중턱의 희끗희끗 보이는 아카시아 꽃을 좀 더 가까이 보고 싶은 충동도 생겨 발걸음을 그쪽으로 옮기고 있었습니다.


5월 따뜻한 햇살과 살랑살랑 부는 바람 소리, 여기저기 아카시아 꽃을 쪼아 먹다 외부인 인기척에 놀라 푸드덕 날아가는 새소리 그리고 내  발아래 흙길에 맞닿아 나는 아자작 소리가 등산길의 고요를 깨우고 있었지요. 한참 올라가다 보니 어느 정도 평평한 산중턱쯤에 나이 든 두 여성분이 맨발로 왔다 갔다 하며 유산소 운동을 합니다. 얼떨결에 마주쳐 '안녕하세요'하며 가벼운 목인사를 하며 ' 발밑이 보드라운 흙에 닿는 감촉이 샘나 나도 조금 떨어진 곳에서 따라 해 보았습니다.


브루나이 있을 때 일정 마치고 귀국한다고 가족방에 문자를 날리자, 마누라가 '하늘, 공기, 바람 그리고 생각의 자유' 모두가 공짜라며 5월의 이때를 한 끗 즐겨야 한다는 말을 떠올리며 공짜 하늘, 공기, 바람을 마시고 보고 느낍니다. 또 세상이 시끄럽고 이런저런 속박과 자기 검열로 '나다움'에 타협하는 나를 들여다보는 생각의 자유도 누려봅니다.


지금 나는 나에게 말 걸기를 하며 너는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혹시 아직도 35년간의 매인 삶과 생각에 머물러 있는지, 매 순간 뭔가를  해야한다는 조바심은 없는지, '평범하고 그만하면 괜찮아'의 중용의 미덕을 잊지는 않았는지 물어보았지요.


러는 사이에도 백사실 계곡은 그윽한 아카시아 향기를 내뿜으며 유혹하네요.  한 번쯤 이 유혹에 빠져도 괜찮을 5월 오후 백사실 계곡의  풍경이다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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