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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남아 사랑꾼 Jun 03. 2024

앵두, 오디, 다래

토종의 추억 거리


며칠 전 집사람이 외국서 친구가 와 서울에 왔다. 마침 진갑과 겹쳐 둘째 아들 결혼할 처자와 식사했다. 물론 히꼬도 같이다. 커피는 분위기 잡을만한 곳으로 가자며 나왔는데 늦게 온다던 비가 내려 당초 계획을 바꿔 반려견 가능한 커피숍에 갔다. 밥은 생일 턱으로 내가 사고, 커피는 아들 보고 쏘라고 했다. 옷가게와 겸하는 카페엔 카페 라떼는 없고 카페 오레만 있다 하여 그냥 시켰더니 한잔에 9천 원이다. 호텔 커피도 아니고 좀 바가지 쓴 느낌이다. 텐트 친 카페라서 빗소리가 들려 그나마 야외 기분은 났다.


아들과 여친이 꽃가게를 몇 군데 들렀는데 5월 무슨 날들이 많아 그런지 예약 없인 꽃을 못 산다며 티라미슈 케익을 사 와 촛불 켜놓고 생일 기념은 했다. 우리는 60 평생 살며 이런 거 안 하는데 했다. 이제 맞춰 사는 습관도 필요하지 않나 싶다.


그다음 날 아침, 히꼬 볼일 보러 가는데 단지 내 앵두나무에 빨간 앵두가 술찬이(경상도 사투리, 주랑 주렁) 달렸다. 한 움큼 따서 생일 선물이라며 마누라에게 안겼더니 공짜라서 그런지, 평소 같으면 '뭐 그딴 짓'했냐고 하는데 아무 말 없이 씻어 먹는다.


사실 내가 앵두를 딴 것은 추억 때문이다. 어릴 적 시골엔 이 맘 때쯤 집뜰에 있는 앵두가 제철 과일이다. 마누라 준다고 했지만 내가 더 먹었다. 씨를 발라내면 먹을 게 없지만 50년 전으로 돌아간 그 맛이다. 서울 여자인 마누라는 모를 게다.


제철 과일은 오디다. 앵두와 달리 먹을 육질이 많고 과육도 달콤하다. 어릴 때 친구들과 뽕나무에 열매인 오디를 배부럴 정도로 따먹었다. 오디는 누에 먹잇감이기 때문에 농약을 치지 않아 유기농 과일이다. 물론 오디의 과즙이 손톱이며 입이며 물들어 영화에 나오는 드라큘라 같았지만 그때 포만감과 흡족함이 생각난다. 친구집에 갔더니 오디를 내놓아 단숨에 다 먹으니 자꾸 리필해 줘 많이 먹었다. 그래도 성에 안 차 집에 오는 길에 오디 한 박스를 사서 배부르게 먹었다.


조금 더 있어야 나오겠지만 다래도 생각이 난다. 키위의 야생 새끼가 다래다. 맛은 키위보다 달고 신맛이  어러 진다. 어릴 적 다래 따러 많이 다녔는데 다래란 놈이 고지대의 첩첩산중에 살아 따기가 좀체 쉽지 않다. 다래는 대신 냉장고에서 키위를 먹으며 다래 맛을 소환했다.


여주집에 앵두나무를 심어 내년엔 양두를 따먹자는 찰진 결심을 한다.


근데 당뇨약을 먹으면서 이런 거 먹어도 되나 모르겠다.


이 글을 쓴 후 알게 되었는데 오디는 당뇨에 좋고, 앵두는 딴 데는 다 좋은데 당뇨에 안 좋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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