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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남아 사랑꾼 Jun 07. 2024

여주의 6월 아침

짖꿎은 밤꽃 향기


이른 아침부터 창문 밖에서 나는 공소리에 잠에서 깼다.


창문을 등에 지고 누워있는 벽에 6월 아침 햇살이 창문 그림자를 새긴다.


누운 채로 발끝을 폈다 다무렸가 수차레 하면서 이상 없이 잘 움직여줘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어제 낮부터 이어진 철이른 6월 더위가 저녁에도 식혀지지 않아 열어젖혀 놓고 잠든 창문 사이로 뒤뜰로 연결된 야산의 밤꽃 냄새, 인간 호르몬의 다소는 역한 다소는 짖꿎은 냄새가 들어온다.


그간 밤꽃 냄새를 많이 맡아 왔지만 이렇게 가까이서 오랫동안 곁을 내준 적은 별로 없었다.


일어날까 말까 몸을 뒤척이는데 마누라와 히꼬가 불쑥 들어온다. 히꼬도 어제와는 달리 기분이 좋았는지 그 짧은 다리로 내 침대에 뽈짝 뛰어 올라와 아침 인사, 유도형 뽀뽀를 한다. 집사람과의 아침 공차기가 충분치 않았던 모양이다.


처도 아침 잔소리한다. 빨리 나가 더워지기 전에 히꼬 운동을 시키라고 한다. 등 떠밀려 나간 뒤뜰 너머의 밤꽃이 눈에 들어온다. 옆에 있던 아카시아 꽃이 시들어 바짝 말라가는데 밤꽃은 인형의 옥수수 머리를 한채 밤나무에 베이지색에 가까운 꽃을 덮고 있다.


저 앞뜰 너머의 저편 농가 숲 속의 밤나무 군락은 봄철 수양버들 군락처럼 6월 아침 햇살을 받아 거의 흰색같이 보인다. 그 아래 있던 흰색의 감자꽃은 지고 감자가 뿌리에서 영글어 가는 모습을 상상한다.


내가 이런 잡념에 빠져 공차기를 허투루 하자 히꼬가 다그친다. 어제 여주 와서 공놀이했을 때는 시들했다. 집사람에게 물어보니 이 더위에 밍크코트를 입은 히꼬의 자연 본능이기도 하지만, 7~8개월마다 돌아오는 그날이라서 몸도 아프고 기분도 안 좋아 그렇다고 한다. 인간이나 동물이 여자로 태어나면 다들 이런 고통이 있나 하고  그냥 넘겼다. 기분이 좋아졌는지 히꼬는 자기 감정선을 꼬리 흔들기 정도, 소리 지르기 그리고 운동 후 집안에서 미친년처럼 질주, 그리고 난 후 벌렁 뒤집기를 한다. 여는 웰시 코기처럼 히꼬의 꼬리를 싹둑 잘랐으면 큰일 날 뻔했다.


그사이 마누라는 아침 목욕을 하며 삶아 놓은 계란 3개 중 하나(나머지는 처와 히꼬 몫), 키위, 사과에 동료가 사다준 싱가포르 Bacha 드립 커피로 아침을 했다. 지난주에 이어 이번주에도 4박 5일 여주 체류가 성가스러워할 마누라를 위해 계란과 과일을 먹기 좋게 잘라 주며 커피 한잔을 서비스했다. 오랫동안 동남아 근무 따라다닌 그가 어지간한 커피는 다 아는데, 바차 커피는 처음이라며 산 맛이 약간 나는 콜롬비아 원두커피가 수준급이라고 평을 한다(바차는 TWP 차로 유명한 회사에서 2019년 야심치게 내놓은 커피 브랜드로 2024년 청담동에도 카페를 열었다. 싱가포르 럭스리 호텔에서 1만원 대 즐길 수 있도록 겨냥한 커피라고 한다. 달달한 연유를 가미한 싱가포르 코피티암 카페의 고급품으로 보면 될지 싶다 ).


싱가포르가 커피 원두 하나 안 나는데 해외에서 원두를 수입해 이 정도 경쟁력을 가진 것을 보면서 나는 동남아의 제조업이 그간 단순히 싼 인건비가 아니라 기술력으로 경쟁력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나는 은퇴 후 동남아 관련 3가지 키워드를 품고 고민 중이다. 첫째 다양성(diversity)과 통일성(unity), 둘째 지속성(continuity)과 변화(change), 셋째 정체성(under-development)과 발전성(development)인데 제조업 경쟁력은 마지막 셋째 키워드와 관련이 있다.  


기술 문턱이 낮은 범용 AI와 아세안의 다양성이 접목하면 새로운 창의적 산업으로 연결되지 않을까, 그러면 동남아가 오랜 서방 식민지 유산에서의 종속적, 의존적 발전을 넘어설 수 있지는 않을까 그런 상상을 한다.


이런 공상에 빠진 나를 보며, 마누라 왈 보통 남편 같으면 귀찮아서 선물 받은 커피를 안 가지고 오는데 꾸역꾸역 커피를 가져온, 나의 물질 공세에, "모든 부인들은 송해를 부러워한다. 왜냐하면 전국 특산물은 다 가져오고 본인은 검소하고 바람도 안 피우기 때문이다"이다라고 한다. 내가 송해는 아니라서 여주 올 때마다 마누라가 좋아하는 해창 막걸리를 사 와 뇌물로 삼고 있다.


내가 그리 환영받지 못한 남편라는 생각이 들어 뜨문뜨문 여주 오겠다고 하다가도, 이내 마음을 바꾸는 것은 꼬리를 너무 흔들어 부르질 정도로  격하게 나를 환영하는 히꼬 때문이다.


히꼬야, 4박 5일 동안 아침저녁 선선한 때 밤꽃 냄새 맡으면 놀자. 놀아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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