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아들 어깨 수술을 지켜보며
2025년 신년 키워드가 '아보하'라고 하는 걸 어느 트렌드 책에서 보고, 이게 뭔가 했더니 '아주 보통의 하루'를 줄인 말이라고 한다.
우리가 즐겨 쓰던 소소한 행복과 소확행과 비슷(이글을 쓰고 난 후 어느 일간지 칼럼에서 보니 '소확행'은 고가 핸드백 산다거나 맛있는 음식 먹는다던가 해외 여행 다녀온 사진 올리기 등 과시형이라고 하고, '아보하'는 이런 소확행 스트레스를 넘은 개념이라고 한다. 2025.2.3자 중앙일보 이향은의 트렌드터치의 아보화 중)한데 요새 젊은 세대 겨냥한 유행 줄임말 정도가 아닌가 하며, 별것 아니라고 여겼다.
근데 큰 아들이 일주일 전 영국 유학 시 만난 말레이시아 친구 결혼식 후 싱가포르에 있는 친구를 방문해 자전거를 타다 넘어져 오른쪽 어깨가 나가 고대 안암병원에서 오늘 수술을 했다. 어깨뼈가 여러 갈래로 부러져 3시간 반 대수술, 1시간 30분 마취 회복 후 병실로 옮겨 놓았다. 어젯밤은 집사람이 병실을 지켰고 내가 오늘 밤 교대 중이다.
병실 복도 의자에서 이 글을 찍고 있다. 진통수액을 다 맞고 난 후 몇 시간 지나면 먹고 싶은 거 먹어도 된다 하여 아들에게 물어보았더니 포카리 스웨트와 사이다라고 하여 냉장고에 사놓았다. 먹고 싶은 게 포카리 스웨트라니.
수술 시작해 몇 시간은 집사람 혼자 수술실 앞에서 지켰다. 난 집에서 우리 히꼬(반려견) 보느라 늦게 병원에 갔다. 마누라는 수술이 언제 끝날지 몰라 화장실도 못 가고 참고 있었고, 1~2시간이면 될 줄 알았는데 수술이 자꾸 늦어지니 온갖 생각이 났든지 눈엔 눈물이 그렁 그렁하다. 장인장모 돌아가실 때도 의연하게 보내던 그였는데 내리사랑인지 아들이 걱정은 되었나 보다.
난 "뭐 괜찮을 거야"하며 대수롭지 않게 얘기하였지만, TV 모니터의 환자 상황판에 큰 아들 진행상태가 연분홍색의 '수술 중'이라고 쓰여있고, 모니터에 어떤 환자는 파란색의 '회복 중'이고, 뜨문뜨문 흰색의 '완료'라는 환자 이름도 보인다. 부러웠다.
나도 은근히 걱정이 되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마누라가 화장실 간사이에 수술 집도의가 나와 내가 갔더니 "어, 환자 형님인가요"라고 묻는다. 나와 아들이 닮긴 했지만 눈썰미는 없는 의사다. 그 와중에도 내가 아직 젊은가 하고 우쭐했다. 그 상황에서 그런 주책스런 생각이 찰나지만 있었다니 ㅠㅠ. 근데 이 의사분은 명의라고 한다. 구글링 해 보니 90학번이다. 그러니 경험은 있고, 장미란 선수 어깨 수술도 했다고 하니 명사 마케팅도 잘하시는 분인 듯하다. 이분이 수술 전 마누라에게 엄청 겁을 주며 기도나 열심히 하라고 했다고 한다. 독실한 신자인 모양이다.
마누라가 기도 소릴 듣고 가족 카톡방에 올려 한동안 냉담 신자인 내가 30여 년 전 받은 나무로 된 십자가를 카톡방에 올렸다. 작년에 결혼한 둘째 아들이 "아멘"하고 반응을 보였다.
운이 좋았다. 고대 병원 자리가 났고 어깨수술 명의가 집도했으니 말이다. 마누라가 남에게 피해 안 주고 좋은 일하며 살아서 천지 기운이 닿아 그렇다며 이제야 자위한다.
그러고는 아들이 영국서 졸업 후 어디서 사주를 보았는데 사주팔자는 괜찮은데 언젠가 큰 사고가 날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이래서 사람들이 사주 관상도 보는 모양이라고 덧붙인다. 이만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신년 액땜으로 여기자고 한다.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우리 삶인데 우린 그걸 모르고 산다. '아주 보통의 하루'가 이리 소중한지 큰 아들 수술을 하고 몸으로 깨달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술실 앞에서 환자 수술 상태를 지켜보며 마음 졸이는 보호자들이 자신들에게 둘도 없이 소중한 이들의 이름이 안내판 모니터에서 최소한 파란색의 '회복 중', 흰색의 '완료' 표시를 빨리 보게 되길 마음속으로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