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쓰는 노자 서문

가르침과 배움의 관점으로 노자 <도덕경> 새로 쓰기

by 김경윤

서(序)


1.

고대 철학자 중에 스승으로 모실만한 분이 많다. 서양에서는 소크라테스를, 동양에서는 공자를 손꼽을 수 있다. 유가의 창시자 공자는 정치가로서는 실패하였으나, 교사로서는 유래 없는 성공을 거두었다. 공자는 일찍이 학문의 중요성을 깨닫고[志學] 두루 배웠으며, 서른 살을 전후로 하여[而立] 제자들을 모아 수업을 했다. 중국 역사상 최초의 학당이라고 여겨진다. 그의 가르침을 받은 자는 3000명이나 되었다고 하니 그의 가르침의 위대함을 짐작할 만하다. 사마천은 『사기』에서 공자를 제후와 같은 지위로 높이고 <공자세가>를 따로 집필했으며, 그의 제자들의 사적도 <중니열전>에 정리하였다.

공자와 노자의 관계는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으나, <공자세가>, <중니제자열전>, <노자한비열전> 등에 그 흔적이 보인다.

우선 <공자세가>에 따르면, 공자가 일찍이 주나라에 갔을 때 노자(老子)에게 예(禮)를 물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노자가 예에 대하여 뭐라고 대답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공자가 주나라를 떠날 때 배웅하며 이렇게 말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내가 듣건대 돈 많고 신분이 귀한 자는 사람을 배웅할 때 재물로 하고, 어진 자는 사람을 배웅할 때 말로써 한다고 하오. 나는 돈 많고 신분이 귀하지는 못하나 마음속으로 어진 사람이라고 부르고자 하니 다음과 같은 말로써 그대를 배웅하겠소. ‘귀 밝고 눈 밝아 깊이 관찰하는 사람에게는 죽음에 다가설 수 있으니 이는 다른 사람을 잘 거론하기 때문이요. 널리 익히고 변론을 잘하고 재능이 깊고 큰 사람은 그 사람을 위태롭게 하게 되는 자이니 이는 다른 사람의 잘못된 점을 잘 끄집어내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의 자식이 된 자는 자신의 존재를 내세우지 말고, 다른 사람의 신하된 자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아야 합니다.’”

후에 공자의 생애로 미루어 보건대, 공자는 노자의 충고를 귀담아 듣지 않았다. 그로 인해 많은 고난의 삶을 살게 된다. 그것 또한 공자의 운명인 것을.

공자에게는 뚜렷한 스승이 없었으나, 존경하는 인물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중니제자열전>에 따르면, “공자가 존경한 인물로는 주나라의 노자(老子), 위나라의 거백옥(蘧伯玉), 제나라의 안평중(晏平仲), 초나라의 노래자(老萊子), 정나라의 자산(子産), 노나라의 맹공작(孟公綽) 등이 있었다.”고 전한다. 노자(老子)가 1순위로 거론된다.

한편 <노자한비열전>에서도 노자에 대하여 간략하게 소개한 다음에, 곧바로 공자와 노자의 대화가 소개된다. 공자가 노자에게 ‘예’를 묻자 노자가 이렇게 대답했다.

“당신이 말하는 성현들은 이미 뼈가 다 썩어 없어지고 오직 그 말만이 남아 있을 뿐이오. 또 군자는 때를 만나면 관리가 되지만, 때를 만나지 못하면 바람에 이리저리 날리는 다북쑥처럼 떠돌이 신세가 되오. 훌륭한 성인은 물건을 깊숙이 숨겨 두어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이게 하고, 군자는 아름다운 덕을 지니고 있지만 모양새는 어리석은 것처럼 보인다고 나는 들었소. 그대는 교만과 지나친 욕망, 위선적인 표정과 끝없는 야심을 버리시오. 이러한 것들은 그대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소. 내가 그대에게 할 말은 다만 이것뿐이오.”

<노자한비열전>에 나오는 노자의 충고가 <공자세가>에 나오는 노자의 충고보다 날이 서 있다. <공자세가>의 충고는 공자가 주인공이라 공자에 대한 격식을 갖추고 있으나, <노자한비열전>의 충고는 노자가 주인공이라 공자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는 것일까?


아무튼, <노자한비열전>에는 이렇듯 날카로운 충고를 듣고 난 공자의 노자 평(評)도 소개하고 있는데, 다음과 같다.

“나는 새는 잘 난다는 것을 알고, 물고기는 헤엄을 잘 친다는 것을 알며, 짐승은 잘 달린다는 것을 안다. 달리는 짐승은 그물에 쳐서 잡을 수 있고, 헤엄치는 물고기는 낚시를 드리워 낚을 수 있고, 나는 새는 화살을 쏘아 잡을 수 있다. 그러나 용이 어떻게 바람과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지 나는 알 수 없다. 오늘 나는 노자를 만났는데 그는 마치 용 같은 존재였다.”

공자에게 노자는 용(龍)과 같은 존재였다. 공자는 노자의 가르침을 따르지는 않았으나, 노자를 존경한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노자의 문하에는 없었으나 노자는 공자가 우러러보는 스승격인 셈이다.


2.

공자에 대한 정보는 『사기』뿐만 아니라 『논어』 속에 차고도 넘친다. 하지만 노자에 대한 정보는 - 다른 노장철학자들과 마찬가지로 – 아주 귀하고 드물고 정확하지 않다. 일단 그의 생몰년을 확인할 수 없고, 부모의 이름조차 확인되지 않는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정보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사기』에 나오는 몇 쪽 안 되는 정보다.

이를 짜깁기 해보면, “노자(老子)는 초나라 고현 여향 곡인리 사람으로 성은 이씨(李氏), 이름은 이(耳), 자는 백양(伯陽), 시호는 담(聃)이다. 그는 주나라의 장서를 관리하는 사관이었다.” 초나라 시골 출신인데 주나라 장서를 관리하는 사관을 지냈으니 나름 출세를 한 셈이다. “노자는 도(道)와 덕(德)을 닦고 스스로 학문을 숨겨 헛된 이름을 없애는 데 힘썼다. 오랫동안 주나라에서 살다가 주나라가 쇠락해 가는 것을 보고는 그곳을 떠났다. 그가 함곡관(函谷關)에 이르자, 관령(關令) 윤희(尹喜)가 이렇게 말했다.

‘선생께서는 앞으로 은둔하려 하시니 저를 위해 억지로라도 글을 써 주십시오.’

이 말을 듣고 노자는 『도덕경』 상, 하편을 지어 ‘도(道)’와 ‘덕(德)’의 의미를 5000여 자로 말하고 떠나갔다. 그 뒤로 그가 어떻게 여생을 살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무명의 운둔자로 남을 수 있었으나 『도덕경』의 저자로 알려졌다. 그는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의 고향은 남쪽이었으나, 그가 지나친 함곡관은 서쪽이었다. 한참 후에 불가에서는 ‘노자가 서쪽으로 간 까닭은?’과 같은 화두가 유행하기도 했다. 노자(老子)는 한마디로 불가사의한 인물이었다.


3.

후세에 장자(莊子)가 썼다고 알려져 있는 『장자(莊子)』에는 노자와 관련된 에피소드가 다수 등장한다. 하지만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확인할 길은 없다. 어쩌면 노자라는 인물 자체가 허구였을 지도 모른다. 노자의 연구자 대부분은 노자의 생애에 대하여 불확정의 영역으로 취급하고 있다. 단지 우리는 그가 썼다고 알려진 책 – 후세에 연구자들에 따르면 집단창작과 편집, 수정 과정을 거쳐서 묶인 책 - 『도덕경』이 있을 뿐이다. 어떤 사람은 노자의 책을 제왕학으로 읽고, 또 어떤 사람은 병법서로 읽으며, 다른 이들은 우주의 원리와 삶의 신비, 양생술의 교과서로 읽기도 한다. 물론 고대철학서로 가장 많이 연구된 책인 것은 분명하다.

『도덕경』은 중국의 고전 중에서 주석서가 많기로 유명하다. 대략 1,800여종의 주석서가 씌어졌고, 그 중 현존하는 것이 350여종이라고 하니, 그만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책이라는 말이리라. 외국어로도 일찍이 번역되어 펴졌는데, 헤겔이나 라이프니츠, 쇼펜하우어, 하이데거, 톨스토이 같은 철학자나 작가들이 읽고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어로도 가장 많이 번역된 책으로 알려져 있는데 100종 이상의 번역서가 나왔다.

고작 5000여자로 이루어진 81편의 시 – 혹자는 60편으로 묶을 수 있다고도 말하고, 혹자는 120편으로 늘릴 수도 있다 말하는 시편들 -에 이렇게 많은 관심을 두는 것은 역사 이래 보기 드문 일이다. 그만큼 해석과 확장의 여지가 많은 책이면서 인간의 사고에 많은 계발을 주는 책임에 분명하다.

4.

『도덕경』에 대한 연구는 다양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1973년 호남성 장사시 인근의 마왕퇴(馬王堆) 한대 고분에서 발견된 백서본, 1993년 호북성 형문시 곽점(郭店) 초나라 고분에서 출토된 죽간본이 나오면서 『도덕경』의 원래 모습에 대한 연구에 진척되었고, 2009년에는 해외 화교로부터 기증받아 북경대학이 소장하고 있는 전한대 죽간본도 원본의 형태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 소중한 자료이다. 또한 삼국시대 위나라의 학자 왕필이 쓴 『노자주』나 그와 유사한 시대에 하상공이라는 사람에 의해 쓰여진 『노자 하상공장구』 등은 노자를 연구하는 사람에게는 필독서에 가깝다. 이러한 다양한 판본에 대한 비교와 연구를 통해 우리는 보다 정확한 『도덕경』의 실체를 파악할 수 있으니, 고마울 따름이다.

하지만 『도덕경』이 학자의 전용물이나 학문적 대상으로만 쓰일 것이 아닌 이상, 다양한 형태로 읽히고 해석, 번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근에 파멜라 메츠(Pamela Metz)가 쓴 『농사의 도 – 농사짓는 이와 돌보는 이를 위한 노자 도덕경』(2014, 민들레)를 읽었는데, 노자를 농사의 관점에서 재해석하여 표현한 것이 생소하면서도 신선했다. 흥미가 있어 좀 더 찾아보니 저자는 『도덕경』을 농사, 배움, 여성, 창의력의 관점에서 새롭게 해석하고 재창조하고 있었다. 그중에서 이현주가 번역한 『배움의 도 – 가르치고 배우는 이를 위한 노자 도덕경』도 있었다. 썩 재미난 작업이었다.

이런 식이다. 도덕경 45장의 원문을 해석하면 다음과 같다.


완전히 이루어진 것은 모자란 듯합니다만(大成若缺)

그 쓰임에는 다함이 없습니다.(其用不弊)

완전히 가득 찬 것은 빈 둣합니다만(大盈若庶)

그 쓰임에는 끝이 없습니다.(其用不窮)

완전히 곧음은 삐뚤어 보입니다.(大直若屈)

완전한 솜씨는 서툴게 보입니다.(大巧若拙)

완전한 웅변은 어눌해 보입니다.(大辯若訥)

바삐 움직이면 추위를 이기지만,(躁勝寒)

고요히 있으면 더위를 이깁니다.(靜勝熱)

맑고 고요함, 이것이 세상의 표준입니다.(淸靜爲天下正)

파멜라 메츠는 이 장에 ‘어리석게 됨(Being Foolish)’라는 소제목을 붙이고 이렇게 다시 썼다.


참된 배움은 불완전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완전하게 배움 그 자체다.

참된 완성은 비어있는 듯 보인다.

그러면서도 완벽하게 끝마쳐져 있다.

참된 인생길은 구부러질 수 있다.

참된 지혜는 어리석어 보인다.

참된 기교는 아무 기교가 없는 듯 보인다.

슬기로운 교사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것이 자라는 대로 기른다.

한 옆으로 비켜서서 도가 스스로 말하게 한다.


원문의 정신을 어기지 않고도 교육적 차원으로 변용한 멋진 재창조이다. 이렇듯 외국의 사상가들은 자신의 용도에 맞춰 경전을 마음껏 활용하고 있다. 농부에게는 농부의 『도덕경』을, 교사에게는 교사의 『도덕경』을, 여성에게는 여성의 『도덕경』을 소개한다. 물론 견강부회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어떤가? 고전은 원문 그대로 깊이 보관해야할 유물이 아니라 현대에 맞게 다시 가공하고 사용하여야할 재료이다.

5.

노자의 『도덕경』은 참으로 유용한 인생독본이자 철학책이며, 병법책이고, 정치서적이며, 양생지침이고, 생태교과서이다. 여성주의 관점에서 다시 읽어본다면 훌륭한 페미니즘 책이 될 수도 있다. 물론 훌륭한 교육서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교육의 관점에서 노자의 책을 다시 써보는 것도 의미 있는 활동이 될 듯 싶다.

노자 책이라는 망망대해에 물 한 방울 더 첨가한다고 노자가 훼손되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말 수를 줄여 5000여자로 써놓은 그의 책을 따따부따 얘기함으로써 말 수를 늘리는 것이 조금은 송구스러울 따름이다.

맛보기로, 앞으로 쓰여질 글의 흐름을 소개하면, 노자가 쓴 81개의 시를 교육관련 주제로 변용하여 다시 쓴 후 거기에 작은 덧글 하나가 붙는 형식이 될 듯합니다. 아마도 아래와 같은 형식이 되겠네요.

1장. 가르침은 끝이 없습니다


가르침에는 끝이 없습니다.

끝이 있다고 말하면 안 됩니다.

배움에도 끝이 없습니다.

끝이 있다고 말하면 안 됩니다.

끝이 없기에 모든 것의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

시작이 있기에 가르치고 배울 수 있습니다.

그것이 가르침의 신비입니다.

그것이 배움의 현장입니다.

가르침과 배움은 결국 하나입니다.

우리는 모두 교사이자 학생입니다.

이름만 다를 뿐 둘 다 신비로운 것입니다.

<덧글>

노자 1장의 시작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 저는 이렇게 해석합니다. “우리가 따르는 길은 영원한 길이 아닙니다. 우리가 붙인 이름은 영원한 이름이 아닙니다.” 이 12자의 해석으로 학자들의 길이 천 갈래 만 갈래 나누어집니다. 가도(可道)와 상도(常道)를 서양 개념으로는 현상(現像)과 실재(實在), 인식과 사물 그 자체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이밖에도 무수히 많은 논의가 가능합니다.

가르침과 배움의 영역으로 좁혀 보지요. 교육(敎育)과 학습(學習)은 같을까요, 다를까요? 주체의 측면에서 보면 가르침[敎育]의 주체는 선생입니다. 배움[學習]의 주체는 학생이지요. 과연 그럴까요? “가장 큰 배움은 가르침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교사는 가르치면서 배웁니다. 가르칠 때마다 무지의 영역을 깨닫습니다. 그리하여 학생이 됩니다. 다시 배움의 길로 들어갑니다. ‘교사=학생’이라는 신비한 공식이 성립됩니다. 워즈워스는 ‘무지개’에서 노래합니다.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 아이가 어른의 시원이었던 것처럼, 학생이 교사의 처음 모습입니다. ‘학생=교사’입니다. 이 가르침과 배움의 순환은 끝이 없습니다. 교학상장(敎學相長), 가르침과 배움으로 서로 성장합니다. 신비입니다.


이렇게 앞으로 한 장씩 연재합니다. 노자 <도덕경>이 총 81장이니, 81번의 연재가 되겠네요. 긴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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