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 자유

2024. 1. 24.

by 김경윤

인간처럼 오류가 있고 무지한 생명체만이 인간이 자유로운 방식으로 자유로울 수 있다. 우리는 물질이 어떻게 해서 우리의 세계를 꿈꿀 수 있는지 알지 못한다. 그 꿈이 끝나서 우리가 죽고 나면 그다음에 무엇이 올지도 알지 못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아니게 만들어 줄 지식을 열망한다. 무엇이 되고 싶은지도 모르면서도 말이다. 하지만 왜 자신으로부터 도망치려 하는가?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영지주의자들이 추구한 것과는 매우 다른 종류의 내면의 자유가 가능해진다. 이러한 "소극적 수용 능력"을 갖게 되면 더 높은 형태의 의식을 원하지 않게 될 것이다. 삶에 의미를 부여하려 애쓰지 않을 것이고, 의미가 왔다가 사라지게 두는 것에 만족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비틀거리지 않는 꼭두각시가 되는 대신 인간세계에 발부리를 부딪혀 가면서 길을 낼 수 있을 것이다. 위버-마리오네트는 자유로워지기 위해 꼭 날 수 있게 될 때를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하늘로 비상하기를 추구하지 않으면 땅으로 떨어지는 데서도 자유를 찾은 수 있다. (185~186쪽)



나는 자유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젊은 시절에는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라는 성서의 구절을 좋아했고, 나이가 들어서는 "우리가 자유를 돌보면 진리는 스스로를 돌볼 것이다."라는 리처드 로티의 말을 좋아했다. 10년 넘게 자유청소년도서관을 운영할 때, 농담조로 자유총연맹 산하의 단체 같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자유는 마치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덕목이자 특권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존재들이 자연(운명)에 속박되어 있을 때, 유독 인간만은 자연 상태에서 벗어나 자신의 고유한 삶을 설계하고 운영할 수 있는 대자적 존재라는 실존주의적 명제를 믿고 있었다.

그러다가 진화론을 접하면서 세상의 모든 존재는 진화의 우연적 산물이며, 인간 역시 그러한 진화의 과정에서 자연이 선택한 하나의 모습임을 알게 되었다. 자연의 거대한 진화과정은 목적도, 가치도, 윤리도 개입되지 않는 생존의 변이와 다양체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사라지는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도 배웠다. 유독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특권이나 우월성은 없으며, 비록 인간이 자기중심적 시선으로 세상을 그렇게 질서 지우고 지배한다 할지라도, 가이아(지구)의 입장에서 보면 인간 또한 역사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최종포식자들의 출현과 몰락의 한 모습에 불과하다. 이런 사실은 우리를 해방시킬까? 좌절시킬까?


존 그레이는 집요하게 인간의 자유문제를 캐묻고 자유란 무엇인지, 인간은 어떠한 자유를 원하는지, 그러한 자유가 인간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지 탐구한다. 그레이의 여러 작품 중에서 《꼭두각시의 영혼》은 '인간의 자유에 대한 소고'라는 부제를 가지고 인간중심주의를 해부하여 자유의 정체를 밝혀낸다.


우리나라에서는 유독 정치적 우파에서 자유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한다. 우파가 강조하는 자유의 주체는 권력자이거나 기업에 해당한다. 그 외의 존재들은 결코 자유의 주체가 아니라 지배와 개조의 대상이며, 개 돼지로 취급받아도 되는 존재로 추락한다. 그런 점에서 자본주의가 유일하게 정당한 경제원리임을 천명한 나라치고 인간의 자유가 온전히 보장되지 않는다. 자유는 마음속에서 그리는 심리적 판타지에 불과하다. 우리가 자유를 그토록 갈망하는 것은 실제로 자유가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물론 존 그레이는 자본주의 하에서의 자유만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중심주의가 만들어낸 인간의 특권적 자유를 비판하며, 그러한 가치를 회의하는 방법으로 글을 전개한다. 책의 분량은 적지만, 다루는 내용은 방대하고, 논증은 날아다닌다. 쉽게 일독을 권할 수는 없지만 , 과연 존 그레이다운 저술임은 분명하다.


<사족>

풍랑주의보로 3일 연짱 쉬고 있다. 눈보라가 휘날려 매표소로도 못 가고, 집안에 처박혀 늦게까지 자고, 일어나 밥 지어먹고, 또 자고, 반찬 하나 만들어 밥 먹고, 또 자고, 일어나 책 보다가, 밥 먹고 또 자고... 개팔자가 따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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