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 불고기 아니고 물고기

2024. 1. 28.

by 김경윤

1.

한문 많이 알고 그림 그리고 사진 잘 찍는 박종천 선배와 헬로유기농이란 이름으로 전국을 돌아다니며 노래하는 나명호 이다겸 커플이 제주도로 왔다. 26일은 내가 쉬는 금요일이라 가파도 말고 제주도 모슬포항 근처에서 만나 횟집을 찾았고, 운진항에서 표 파는 하나씨 남편이 주방장으로 일한다는 미영이네에 가서 회를 먹고 술을 마셨다. 미영이네는 고등어회 전문집이라, 비싼 고등어회를 중심으로 방어회를 곁들여 먹었다. 오랜만에 먹는 낮술이 취해 가파도로 가지고 못하고 운진항 근처에 싸구려 호텔에서 잠을 청했다.

2.

27일 날 새벽에 6시에 일어나 걸어서 운진항까지 왔다. 그래도 첫배까지 2시간 넘게 남아, 주변을 돌다가 기가 막힌 소머리국밥집을 찾아 새벽밥을 먹었다. 돌아가신 송해선생이 와서 먹었다는 것을 기념하는 사진이 바깥에 걸려 있었다. 운진항 무인택배함에 맡겨둔 짐들을 찾아 첫배에 올랐다. 첫배에는 관광객보다 어제 바깥에서 일을 보고 돌아오는 가파도 분들이 더 많이 타고 있었다. 반갑게 눈인사를 하고 잠시 시간이 흐르니 어느새 가파도. 운진항에서 15분 남짓 걸리는 내가 근무하는 작은 섬. 빠르게 터미널로 달려가 첫배 근무를 대신 서준 전 직원에게 감사인사를 하고, 선물로 사둔 쌀 식빵을 건넸다. 불가피한 사정이 생겨 가파도로 돌아가지 못할 때, 나 대신 비상근무를 해줄 지인이 있다는 것이 참으로 고맙다.

오전 근무를 마치고 점심시간이 되자 어제 만난 3총사가 가파도로 들어왔다. 내가 묵는 곳에서 1박을 할 예정이다. 점심식사는 원주민들도 자주 찾는 전망대 식당에서 백반, 해물짬뽕, 해물파전을 시키고 가파도 막걸리 한 사발씩 나눴다. 식사 후 명호형이 호기 있게 물고기를 낚는다고 해서, 반신반의한다. (말을 들어보면, 낚시꾼인데 내가 목격한 적이 없어서. 나는 못 잡는다에 5천 원을 걸었다.) 식사 후 집에 들러 짐을 풀고, 나는 다시 근무하러 매표소로 돌아가고, 근무가 끝나는 시간에 맞춰 일찌 누나네 집에 모이기로 했다. 어제 방어 한 마리를 통째로 잡아달라고 주문해 놓았으니 저녁에는 방어회로 배 터지게 먹겠구나.


매표소에 있는데, 종천 선배가 카톡으로 명호형이 잡았다는 물고기들을 사진으로 찍어 보낸다. (아, 내 돈 5천 원을 잃게 되었다.) 나중에 들어보니 회를 뜰 정도로 큰 물고기들은 아니라서, 먹기 위험한 복어는 다시 바다로 보내고, 작은 물고기들은 동네 길고양이들에게 던져줬다 한다.(길냥이들의 물고기 잔칫날이다!)

근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3총사가 사들고 온 소주와 맥주를 바리바리 챙겨 품 안에 들고 일찌 누나집으로 고고! (어렸을 때 아버지 덕에 일제 제품을 많이 써서 친구들이 일제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는데, 가파도 발음으로 일찌, 일찌 그렇게 들려 나는 일찌 누나라고 부른다.)

아이고야, 방어 한 마리에 이렇게 많은 살점이 붙어있었나 싶을 정도로 푸짐하고 두툼한 회를 배추에 싸 먹고, 김치에 싸 먹고, 김에 싸 먹고, 장에 찍고, 배 터지게 먹었는데도 고기가 남는다. 회는 그만! 방어 머리와 내장으로 끓인 지리탕에 밥 조금씩 말아먹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집으로 돌아오니 7시 반. 고양에서는 한창 활동할 시간이지만 가파도는 한밤중이다. 커피를 끓여 한 잔씩 하고, 남은 맥주로 간단히 2차를 하고 일찍 잠을 청한다.

3.

연이틀 마신 술 덕인지, 불고기가 아니라 물고기를 주로 먹은 식사 덕인지, 아침에 일찍 눈이 떠진다. 자고 있는 3총사를 위해 따뜻한 누룽지를 끓이고, 토스트기를 꺼내 눈에 보이는 곳에 놓아두고, 커피 한 잔을 만들어 마시고, 빵에 잼을 발라 한 조각 먹는다. 보일러실 대피소에 눌러앉은 감자(노랑 고양이)에게 새로 사 온 참치캔을 따주고 자전거 타고 집을 나선다. 새벽 4시.

가파도에 차가운 보슬비가 내리고 있다. 매표소에 출근시간보다 4시간 일찍 도착해서 이 글을 쓴다. 불고기가 아닌 물고기로 시작해서 물고기로 끝나는 2박 3일의 시간이 빠르게 흘러갔다. (사진은 주로 박종천 선배와 기록의 천재 이다겸의 것을 사용했다.) 아마도 오늘 점심을 같이 먹고 3총사를 배웅할 것 같다. 하지만 아직은 새벽이니, 좁은 공간이지만 따뜻하게 주무시라. 좋은 꿈 꾸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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