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중요한 시점에서 노인이 해야 할 일은 직업을 다시 얻어 사회적으로 진출하는 일이 아니고, 혈연과 가족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벗어나 공동체 전체의 비전과 자기 존재의 근원을 위해 일하는 것입니다. 지혜의 장이 열려야 합니다. 이 네트워크가 활발해지면 노인과 청년이 계속 소통할 수 있어요. 지금 우리에게 지혜로운 할머니와 현명한 할아버지가 있다면 얼마나 대단한 축복입니까? 마을이나 집안에 그런 노인이 있으면 아이들이 갖고 있는 심리적 불안은 거의 치유돼요. 지금 아이들이 모두 심리적으로 불안한 건 하소연할 할아버지, 할머니가 없기 때문이에요. 친구도 없고, 엄마한테 얘기해도 소용 없으니까 결국 정신과에 가는 거죠. 그런데 할머니한테 가서 얘기하면 말하는 순간 치유돼요. 이러한 노년 문화를 다시 회복하려면, 지금까지 말씀드린 대로 청춘에 대한 허황된 이미지로부터 벗어나, 주로 성적 쾌락으로 구성된 소비 문화와 몸의 '탐진치'로부터 해방되어야 합니다. 그러고 나면 새로운 노년 문화가 꽃피게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59~60쪽)
- 고미숙, <청춘으로부터의 해방, 몸으로부터의 치유> 중에서
한편으로는 꼭 '곱게' 늙어야 할까하는 질문을 던지는 입장이 있어요. 바로 접니다. 아주 반인권적인 시각이 아닐까 하는 부분이기도 한데요, 일본의 유명 소설가 아리요시 사와코 "저는 대소변 가리지 못해 타인에게 귀찮은 존재가 될지라도 오래 살고 싶습니다"라고 했어요. 정갈함, 의존에 관한 상식을 깨뜨리는 놀라운 선언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남에게 민폐를 끼치는 것을 큰 수치로 여기는 일본 문화를 감안할 때 더욱 그렇죠. 체액이 통제되고 주름이 없고 머리숱은 풍성하고 허리는 곧으며... 저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나이 들어서도 꿈꾸는 몸이죠. 그러나 노인과 장애인, '뚱뚱한' 여성, 성적 소수자, 이들에 대한 차별은 바로 몸에 대한 비현실적인 욕망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몸은 모든 정치의 시작이죠. 우리는 육체적 고통, 신체적 비참함에 시달리는 이들에게도 (마음속으로는) 우아한 몸가짐을 요구합니다. 하지만 '몸 밖의 대소변'을 수용할 때, 살아 있는 이웃들의 다양한 몸도 존중할 수 있어요. 인간이 사망하기까지 평균 투병 기간은 10년, 그 취약하고 '못생긴' 시절도 소중한 삶의 일부라고 생각합니다. 어린 미모가 최고 가치인 사회에서, 나이 듦과 그에 따른 미추 관념을 바꾸는 것은 혁명이 아닐까요? (104~105쪽)
- 정희진, <노인은 누구인가> 중에서
저는 한국의 노인 세대가 악하다고 얘기하고 있는 게 아닙니다. 강의를 들으신 분들은 다 이해하셨겠지만 한국의 노인 세대는 '아파'요. 굳이 정의하자면 악한 게 아니라 아파요. 상처가 너무 심해요. 오죽하면 자살률이 이렇게 높겠습니까?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자기가 너무 아프면 다른 사람을 돌아볼 수가 없어요. 상처가 너무 심한 노인 세대는 다른 세대, 다른 사람들을 돌아볼 수 없어요.
따라서 치유 없이 아름다운 '꽃대'가 될 수는 없습니다. 자기 치유가 어느 정도 돼야 비로소 다른 사람이 눈에 들어오고 다른 세대가 논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저는 이 치유의 과정을 반드시 겪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치유할 때 제일 중요한 것은 자기에 대한 재평가를 올바른 기준에 따라 수행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기에 대한 재평가를 철저히 사회와 미래에 대한 기여도에 놓고 봐야 된다는 거죠. 현 노인 세대는 최소한 자식의 행복을 위해 평생 헌신해 왔으니 그것만으로 상당한 기여를 한 겁니다. (167~168쪽)
- 김태형, <너무 많이 아픈 한국의 노인들> 중에서
실제로 우리는 세 가지 동심원적인 삶을 살고 있어요. 가장 작은 '나'가 있고 다음에 공동체로서의 '우리', 다음에 '온생명으로의 우리, 곧 온우리'가 있어요. 이게 한 덩어리예요. 그래서 온우리까지를 '나'라고 하는 거예요. 이 세 가지 '나'가 우리 안에 공존하고 있죠. '우리'를 중시할 수도 있고 '온우리'를 중시할 수도 있죠. 사람에 따라 차이가 있는데 '나'만을 중시하는 사람들을 옛날부터 소인이라고 불렀어요. 한편 '우리'를 중시하는 분들이 있죠. 국가가 더 중요하다, 민족이 더 중요하다, 또는 인류를 위해 내 목숨 바친다, 이런 분들을 군자라 합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까지 있습니다. '온생명의 몸이 곧 나다', 바로 성인들입니다. 이런 사람은 드물죠. 부처나 예수 같은 분들이죠. (218~219쪽)
- 장회익, <노년이라는 기적의 '블랭크'> 중에서
고양이 관련 책들만 편식하다 보니, 잠시 단식을 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이번에 송악도서관에서 빌린 책은 모두 다른 책으로 골랐다. 그중 <나이 듦 수업>이라는 책은 아무리 서가에서 찾아도 보이질 않길래, 사서에게 문의하니 큰 글자책은 다른 코너에 있다고 말한다. 아, 노인들이 읽으라고 큰 글자책으로 주문했구나 생각한다. 대출하여 읽어보니 과연 글자도 큼직하고 간격도 넓어 읽기 편하다. (앞으로 큰 글자책을 읽어야 하나?)
노년을 대상으로 여섯 차례 강연을 하고, 이를 책으로 엮은 것이 <나이 듦 수업>이다. 고미숙, 정희진, 김태형, 장회익, 남경아, 유경 등 쟁쟁한 강사들이 출동했다. 그중에서 구체적 경험을 나누는 남경아, 유경은 제외하고, 노인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노인의 삶을 재조명하는 4명의 철학자, 심리학자, 사회학자, 과학자들 강의 중 핵심적인 내용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을 인용했다. 조금 길더라도 차근차근 읽으면 깊은 생각거리를 제공할 것이다.
나이가 드니 나이 듦에 대한 책이 읽힌다. 이 또한 나이 듦의 징표일 것이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편안하게 늙어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