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란 이런 술어들을 둘러싼 투쟁의 양상을 띠게 된다. 그리고 이런 인정 투쟁이 경쟁의식을 낳게 된다. 경쟁의식은 질시를 낳게 되고, 질시는 우월감/열등의식 -- 사실상 동전의 양면이다 -- 을 낳게 되고, 우월감/열등의식은 증오심을 낳게 되고, 증오심은 고통을 낳게 된다. 그래서 자신의 술어들 -- 각종 형태의 출신, 전공, 직업/분야, 재산, 신체적 특징, ...등 --에 집착하는 자아의식(흔히 말하듯이, "자아의식이 강한" 의식)은 불행한 의식이다. 술어적 주체로 구성되는 사회/세상이라는 곳을 살아가는 우리 인간은 누구도 이런 고통을 피해 갈 수 없다.
이런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은 우리의 삶을 구성하는 이름-자리들의 체계가 존재론적이고 가치론적인 실체가 아니라는 것, 그것들은 실선으로 그려져 있는 듯이 보이지만 자의적인 -- 소쉬르적 뉘앙스에서 -- 분절선들 이상의 아무-것도-아니라는 것에 대한 깨달음으로부터 가능하다. 장자는 이 아무-것도-아님을 '만물제동(萬物齊同)'의 이치로써 가르쳤다. 이 '제동'의 경지에 이르렀을 때 홀연히 일반성-특수성으로 이루어진 삶의 격자가 깨끗하게 지워지고 질서의 무(無)이자 무한(無限)한 잠재적 질서이기도 한 허(虛)가 도래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이 보편성='허' 위에서 독특한 '이-것'들을 그려 나갈 수 있게 된다. 이때 우리는 더 이상 위(位)에 집착하지 않는 무위인(無位人)이 된다. (22~23쪽)
철학자 이정우를 안 지는 꽤 오래 되었다. 개인적으로 안다는 것이 아니라, 책을 통해서. 그의 철학적 저술은 하나같이 깊이 있고 방대하다. 나는 그의 전작주의자에 가깝다. 그가 쓴 책은 거의 모두 구입하여 독파했다. 그중 가장 두꺼운 철학책이 《세계철학사》 시리즈였다. 3권이 나왔지만 아직도 완간이 안 된 그 철학책이 나오는 즉시로 나는 구입할 것이다. 이정우는 나에게 서양철학의 엄밀성과 동양철학의 현대성을 가르쳐준 철학자다. 나는 그의 저술을 통해 철학적 개념을 알게 되었고, 동서양철학의 개념들이 얼마나 같고 다른지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한국에 독보적인 철학자임이 분명하다. (장담한다!)
가파도로 와서 고양이책 편식을 잠시 단식하려고 대출한 신간 중에 단연 이정우의 《무위인-되기》는 으뜸이다. 그의 책이 술술 읽히는 것은 아니다. 그는 엄밀한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 구구절절 예시를 들며 설명하기보다는 개념들의 정합성과 관계를 따져 가며 한 문장 한 문장 써내려가는 것을 선호한다. 그러니까 그의 글을 읽으려면 꽤나 정신을 차리고 천천히 공을 들여 읽어야 한다. 게다가 그의 지적 자장이 동서양을 망라하고 있으니, 그 모든 것을 이해하려고 한다면, 뱁새가 황새 쫓아가는 꼴이 될 수도 있다. 모르는 부분이 있더라도 살살 넘기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만큼 알아야 그의 글을 읽는 것은 아니니까.)
어찌되었든 이번에 책으로 엮은 글들은 2009년부터 2022년까지 써왔던 글이라 하니 10년 넘게 공들인 글이다. 그의 10년 내공을 경험할 수 있으니 이 또한 반갑다. 제목으로 쓰고 있는 '무위인'은 노장사상에서 말하는 '무위자연'의 무위가 아니라 정해진 위치가 없다는 의미에서 '무위인'이다. (나도 착각했다가 글을 읽으며 알게 되었다.) 워낙 글을 찰지게 써놔어 천천히 씹어가면서 읽어야해서 진도가 매우 느리지만, 이런 책은 느리게 읽는 것이 제맛이다. 제일 정신이 맑은 시간을 택해 한꼭지씩 읽어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