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다시 쓰겠습니다

2024. 1. 27.

by 김경윤

내일 다시 쓰겠습니다


그만 쓰겠습니다

추모시를


그만 쓰겠습니다

잘려나간 노동자들에 대한 얘기를


그만 쓰겠습니다

버려진 인간들에 대한 시를


그만 쓰겠습니다

적개심에 불타는 시를


그만 쓰겠습니다

결국은 나를 태우는 시를


그만 쓰겠습니다

오늘은 이미 새벽이 당도했으니


12월 말에는 김해자 누나가 시집을 보내오더니, 1월 말에는 송경동 동생이 시집을 보내왔다. 내 주변에 시인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가? 삶의 본질에 다다르지 못하고 주변부를 서성일 때, 시는 삶의 본질에 육박하여 육성으로 나에게 바로 이것이 삶이라고 증언한다.

해자 누나의 시가 아련하고 아득한 깊이를 가지고 있다면, 경동 동생의 시는 날카롭고 우뚝한 높이를 가지고 있다. (송경동의 시는 시 스승인 김남주를 연상하게 한다.) 해자 누나가 삶의 배경을 보여주고 있다면, 경동 동생은 삶의 아픔을 보여주고 있다. (아니다. 반대로 말해도 아무 문제 없다. 배경 없이 아픔이 드러나지 않을 테니까.) 해자 누나의 삶의 거처가 자연이라면 경동 동생은 현장이다. (아니다. 반대로 말해도 아무 문제 없다. 자연이나 현장에 뿌리 박지 않는 시는 생명력이 없으니까.) 둘 다 외면하면 사람이 되지 않는, 사람이기를 포기하게 되는 것들이다.


시집을 받아보고, 송경동 시인의 얼굴이 딱 박혀 있는 표지를 보고, 깜짝 놀랐다. 저 슬픈 눈빛 속에 담겨 있는 분노가, 세상을 직시하고자 하는 분노가 보였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송경동은 한없이 약하고 순하고 착한 시인이다. 그런 시인이지만 그의 거처는 늘 참혹한 노동 현장이거나 재난 현장이거나 시위 현장이거나 농성 현장이었다. 이 순하디 순한 시인은 현장에서 투사로 변신한다. 그의 삶도 시도 타협이 없다. 그는 자신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곳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잡혀가고 갇히고 또 나오고 또 잡혀간다. 대한민국이 바로 그런 곳임을 몸으로 보여준다. 그렇게 살고 쓰면서 사람값이 무엇인지 알게 해 준다.


'집값'이 아닌 '집이 소중한 사람이 되게 하소서


'학벌'이 아닌 '상식'이 소중한 사람이 되게 하소서


드높은 '명예'보다 드러나지 않는 '평범'을 귀히 여기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소수의 풍요'보다 '다수의 행복'을 우선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독점과 지배'보다 '공유와 사랑'이 필요한 사람이 되게 하소서


'사람'만이 최고라는 생각을 버리고 살아 있는 모든 것 앞에 경배하는 새로운 인간종이 되게 하소서


- <사람값> 전문


프랑스 화가 조르주-앙리의 연작 <미제레레(miserere)> 중 40 '얼굴을 맞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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