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의 사자

2024. 2. 9.

by 김경윤

고양잇과 동물이 사실은 정복을 당한 것이 아니며 여전히 꼭대기에 앉아 세상을 호령한다는 주장에도 설득력이 있다. 사람을 잡아먹는 사자는 퇴위했을지 몰라도 보잘것없던 고양이가 새로운 세기의 사자로 등극해 동일한 왕권을 주장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사자는 그토록 힘이 세고 용맹해도 고양이처럼 멀리 뻗어가지 못했다. 고양이는 북극권에서 하와이군도까지 차지했으며 도쿄와 뉴욕을 정령하고 오스트레일리아 대륙 전체를 급습하여 접수했다. 그리고 그 와중에 지구상에서 가장 값비싸고 경비가 삼엄한 영역까지 차지했다. 인간의 마음이라는 요새를 손에 넣은 것이다. (49~50쪽)


고양이책에 대한 편식을 줄이기 위해 다른 종류의 책을 대출하거나 구입하고 있다. 그렇더라도 고양이책을 끊을 수는 없다. (금단현상이 일어나기 직전이다.) 그래서 고른 책이 에비게일 터커가 쓴《거실의 사자》다. 부재는 '고양이는 어떻게 인간을 길들이고 세상을 정복했을까'이다.

이 책의 특이점은 고양이에 대한 역사적이고 생태지형학적 탐구를 통해 고양이에 대한 편견 -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 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한다는 점이다. 고양이 집사이기도 한 저자는 개에 비해 거의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고양이들이 어떻게, 무슨 이유로, 어떠한 경로를 통해 전 세계에 가장 광범위하게 퍼져나가 지금 최고로 사랑받는 반려(?) 종이 되었는지 전문가들을 찾아다니며 묻고 조사한다. 조사과정에서 고양이를 인간이 선택한 것이 아니라 고양이가 인간을 선택한 유일한 종임을 알게 된다. 다른 가축들은 인간의 선택에 의해 가축화되어 완전히 다른 종으로 진화했다면, 고양이는 야생종이나 인간과 함께 사는 가축종이나 유전자적 변이를 거의 일으키지 않는 유일한 종이다. 변한 것은 고양이가 아니라 인간이었다.


할란체미를 비롯한 마을에서 불가에 둘러앉은 우리들 사이로 처음 들어온 고양잇과 동물은 나약하고 온순한 녀석이 아니었다. 사자의 심장을 가진 용감한 녀석들이었다. 누구보다 겁 없는 고양잇과 동물들은 일단 침투해서 우리가 남긴 맛있는 음식을 먹고 튼튼해진 다음, 근처에서 밥을 먹는 다른 용감한 고양잇과 동물들과 짝짓기를 해서 더욱 배짱 좋은 새끼들을 낳았다. 가축화 대상으로 간택된 동물이 아니라 침입자들이었다. 여우나 오소리 같은 다른 소형 포식동물은 문명의 가장자리에서 머무는 것에 만족했고 오늘날에도 그 자리에 머물러 있지만 과감한 고양이들은 우리 침대까지 이어지는 길을 개척했다. 그러면서 보통 인간이 주도하는 선택의 과정을 저희가 차지해 버렸다. (65~66쪽)


고양이들은 외모적 특이성인 '귀여움'을 무기로 인간을 길들여 왔다. "고양이는 오스트리아 생태학자 콘라트 로렌츠가 ‘아기 해발인’(baby releaser)이라고 하는 것들을 다 갖추고 있다. 동그란 얼굴, 통통한 볼, 넓은 이마, 큰 눈, 작은 코 등이 여기 속한다. 고양이는 다 자라서도, 심지어 오늘날 집 고양이의 원형인 리비카 종조차 어떤 인위적 조작 없이 인간 아기의 모습을 하고 있다. 평균 3.6킬로그램인 고양이 몸집마저 갓난아기의 체구와 정확히 일치한다. 인간은 여기에서 ‘양육 본능의 오발’이라고 일컬어지는 끌림을 느낀다." 인간은 고양이의 귀여움이란 매력에 빠져들어 기꺼이 '고양이 집사'가 되고 '고양이 맘'이 된다.


지금으로서는 고양이가 진화를 통해 얻은 습관과 타고난 외모를 이용해 우리를 대상으로 은근한 통제력을 행사해 왔다고 말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고양이가 우리의 동물이 된 것처럼 우리도 고양이의 동물이 되었다. 고양이는 별다른 보답도 없이 우리의 음식을 먹었다. 그러는 사이에 훨씬 더 원대한 정복의 꿈을 꾸었다. 인간의 마을에 예쁘게 앉아 있거나 쓰레기를 먹거나 시궁쥐를 피하면서 우리 곁에 달라붙어 있기는 해도 고양이는 꼭 우리와 함께 살아야 하는 동물은 아니다. 고양이는 결국 고양이다. 자연 속으로 언제든지 돌아갈 수 있다. 고양이는 더 이상 지붕 위 포식자가 아니며 인간이 만든 세계의 최상위 포식자가 되었다. (99쪽)


고양이의 매력은 귀여움만이 아니다. 고양이는 인간을 이용하기 위해 목소리를 이용할 줄도 안다. 대부분의 고양이들은 야생에서 살 때에는 소리를 거의 내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 곁에 살면서 인간에게 뭔가를 요구할 때 그 특유의 '가르랑 소리'를 낸다.


야옹 소리 역시 사람을 뜻대로 부리기 위함이다. 야생에서 잘 사용하지 않는 이 울음소리에는 별 의미가 없다. 그러나 여러 주인이 자기 고양이의 울음소리를 특정한 명령으로 해석하고 있으며 이것은 올바른 해석이다. 애완고양이는 길고양이나 야생의 고양잇과 동물에 비해 더 자주, 그리고 더 간절하게 야용거릴 뿐만 아니라 자기 집 안에서 자기 주인에게 어떤 지시를 내릴 목적으로 독창적인 야옹 언어를 고안해 낸다. 이런 독특한 신호는 다른 집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주인은 자기 고양이의 특정한 주문을 따를 수 있지만 옆집 고양이의 주문은 이해하지 못할 수 있다. (...) 소통에 과하게 의존하는 습성 탓에 인간은 고양이에게 착취를 당하기 딱 좋다.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을 이용한 어느 조사에서는 우리 뇌의 혈류가 고양이 울음소리의 높낮이에 따라 변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231쪽)


저자는 고양이의 장점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고양이의 확산으로 생태계가 얼마나 많이 파괴되었는지, 어떤 종들이 멸종했는지. 어떤 병들이 퍼져 나갔는지도 자세히 서술한다. 심지어 고양이가 퍼트린 '톡소플라스마'는 다른 종의 세포에 침투하여 죽음에 이르게 하거나, 고양잇과 동물에게 유리하게 감염종을 조종하기도 한다. "고양잇과 동물이 퍼뜨리는 수수께끼 같은 이 미생물은 현재 미국인 6000만 명을 포함하여 인간 세 명 중 한 명의 뇌 속에 산다고 여겨진다." (6. 톡소플라스마 조종 가설에서 이를 자세히 설명한다. 3분의 1의 확률이라면 이미 내 머릿속에도 이 미생물이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고양이가 퍼트린 기생충은 인간에게, 특히 유아에게 치명적인 질병을 유발할 뿐 아니라, 인간의 뇌를 조종하여 고양이에게 충실하게 만든다.

고양이를 위한 전용공간을 만들기도 하고, 고양이 카페에서 귀족 같은 생활을 고양이들이 누리게 한다. "영역을 빼앗는 데 뛰어난 고양이가 인간의 집을 완전히 정복하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실제로 이런 정복이 이미 일어난 곳도 있다. 우리는 여기서 놀라운 새 세상의 서막을 엿볼 수 있을지 모른다. 그 가운데 하나는 고양이 카페다."(249쪽) 심지어는 늙고 병든 고양이 전용 주거공간도 있다. 인간은 이 고양이들의 남은 삶을 위해 기꺼이 비용을 지불하기도 한다.


고양이들은 인터넷도 침공한다. 우스갯소리로 "고양이를 이길 콘텐츠는 없다!"라는 말이 떠돌 정도이다. 고양이를 이용하여 올린 콘텐츠로 엄청난 돈을 벌어들이기도 한다. "고양이의 인터넷 침공은 현실 세계에서 고양이만이 가진 능력, 그리고 고양이가 거쳐온 특별한 역사와 결부되어 있을 가능성이 더 높다. 고양이의 온라인 세계 정복은 고양이가 훨씬 더 광범위한 생태계와 문화를 점령했던 방식과 일치한다. 요컨대 고양이는 프톨레마이오스왕조가 나일강 유역을 지배했을 당시부터 세력을 빠르게 확장해 왔다."(299쪽) 이제 인터넷은 "고양이 공원"이 되었다. 이제 고양이들은 "쥐 대신 마우스 클릭을 먹고살게 된 것이다."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고양이는 숭배의 대상이자 살해의 대상(제물)이기도 했다. 저자는 고양이의 변천사를 냉정한 시선으로 관찰하고 기록한다. 결국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

앞표지에는 책 제목이 없고, 뒷표지에 제목이 있다. 재미난 구성이다.

"이 책 전반을 통해 나는 고양이 같은 동물을 있는 그대로 보고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우리의 놀잇감이 아닌 자기만의 전략과 사연을 가진 강인한 생명체로 보아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고양이를 본다는 것은 곧 우리 자신을 직시하고 우리의 광범위한 능력을 인정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친절과 잔혹이 기이하게 뒤섞인 우리의 태도를 직시하고 우리가 무제한적으로, 때로는 경솔하게 행사하는 우리의 영향력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지구의 여러 생명체는 가망이 없다.

(...)

고양이들은 인간이 승승장구하는 한 괜찮을 것이고, 우리보다 더 오래 살아남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없었다면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고, 우리가 창조하지는 않았지만 우리의 동물이다. 우리의 '심부름꾼'이라는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우리와 달리 고양이에게는 어떤 죄도 없다."(326~327쪽)


오랜만에 진지하고 광범위하고 객관적인 그러면서도 고양이에 대한 사랑이 담긴 책을 읽었다. 책을 잘 고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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