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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윤 Mar 26. 2024

오늘 : 가파도 밖으로 3

2024. 3. 26.

1.

아침은 어디에서나 6시 50분이면 눈이 떠진다. 알람이 울리는 시간. 평소 같으면 일어나 화장실 가고 세수하고 고양이밥 챙기고 내가 먹을  찌개(국) 끓이고 밥 먹고 설거지하고 분주했겠지만, 오늘은 친구와 형님과 함께 오투힐에서 하루를 지냈기에 할 일이 별로 없다. 화장실 가고 세수하고 밖으로 나와 주변을 어슬렁대다가 식당으로 가서 조식면 된다.


문을 열고 로비로 나오니 <구분하지 말라> 는 오쇼의 글이 눈에 띈다.


언덕이든, 봉우리든, 가시밭길이든

구분하지 않는 삶이 그대를 풍성하게 한다.

좋은 일, 힘든 일 구분하지 말고

바람처럼 떠 다녀라.

어느 가지에도 걸리지 말고 머물지도 말라.

가장 낮은 것과 가장 높은 것이

그대의 삶 속에서 만난다.

바로 그때 그대의 삶은 풍성해진다.


가장 좋은 것과 가장 나쁜 것이 어울릴 때 풍요롭다.

두 개가 있음으로써 풍요롭다.

강은 두 개의 강둑사이로 흐른다.

나무는 하늘과 지옥, 높은 곳과 깊은 곳

둘 다에 존재한다.


긍정적인 마음은 바로

그대에게 오는 모든 것을 수용하는 마음이다.

이때 그대의 영혼은 강해지며

두려워하거나 분노하지 않게 된다.

성인의 강함을 그대도 얻을 수 있다.

그게 진정한 카리스마이다.


....OSHO

오투힐 리조트를 차린 대표의  마음을 읽는 듯하다. 조식을 하는데 대표가 직접 나와 인사를 하고, 식당 피아노에 앉아 연주도 해준다. '인생을 축제처럼 살자!'는 그의 구호가 손색없이 실현되는 공간이다. 빵과 잼, 구운 계란에 당근주스와 커피를 마신다. 주인과 함께 앉아 살아온 이야기를 잠시 듣는다.

2.

식사 후 짐을 정리하여 차에 오른다. 오늘은 오후까지만 같이 지내고 제주공항에서 헤어지기로 했다. 창의 선배가 꼭 만나야 할 사람이 있다며 보롬왓으로 가자 한다. 14년 전에 바람만 부는 넓은 언덕을 구매하여, 그곳에서 자신의 꿈을 하나하나 만들어간 신화적 인물 이종인 대표를 소개해주겠단다.

30분가량 차를 몰아 달려간 곳은 그야말로 허허벌판. 그곳에 꽃밭을 가꾸고, 메밀, 수수를 키워 가공하고 상품화하고, 판매하고, 관광지로 개발하여 성공했다. 지금은 커피하우스를 운영하고 초콜릿 공장을 세우겠다는 계획을 진행하고 있다는  이종인 대표는 생각보다 훨씬 젊은  사람이었다. 제6차 산업혁명은 농업이라 믿는 사람, 농업을 하려면 농사는 30%만 하고, 그것을 가공, 유통, 광고, 서비스와 관련짓는 농업인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 농업인의 절박함에 비해 농업행정은 더디기만 하다고 안타까워하는 농업인 이종인을 보면서 왠지 가슴이 아리면서도 뿌듯하다.

3.

배가 출출하다. 보말칼국수 맛집을 검색하여 찾아갔으나 금일 휴무. 그 옆에 있는 고기국수, 몸국집에 들어가 식사를 했다. 알고 보니 이곳도 유명한 맛집. 모든 음식을 직접 가꾸고 대접하는 주인의 정성이 듬뿍 담겨있다. 우연히 들어갔다가 횡재한 경우다.

식사 후 창의 선배는 멋진 초등학교 하나를 구경하자고 한다. 교훈이 '차츰차츰'이란다. 오래된 동백나무와  놀이터가 근사한 곳은 바로 선흘초등학교. 학교경비를 보시는 분께 잠시 양해를 구하고 교정을 거닐며 사진을 찍었다. 교육계의 마당발 창의 선배가 아니었으면 꿈도 못 꿀일이다.

4.

이제는 이들과 헤어져야 할 시간. 차는 제주공항으로 향한다. 나는 그곳에서 직행버스를 타고 모슬포로, 이들은 다시 멋진 해안가가 펼쳐진 숙소로  가야 한다. 저녁식사까지 같이 하고 맥주 한 잔 하자는 꿀 같은 제안을 뒤로한 채, 아쉬운 작별을 한다. 5월에 고양으로 올라가면 다시 보자고 약속하며.


드디어 길었던 3박 4일의 주의보가 선물해 준 벼락 같은 휴가가 종반에 다다랐다. 나는 모슬포로 가는 직행버스 안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오늘 저녁은 모슬포호텔에 묵으며 간단히 저녁식사를 하고 푹 쉴 것이다. 아침에는 장 보고 첫배 타고 가파도로 들어간다. 그리고 다시  매표원으로  살 것이다.


꿈같고 꿀 같던 시간은 바람처럼 사라지겠지만, 같이 지내며 웃고 즐겼던 웃음과 온기는 오래도록 내 주위에 머물겠지. 그러니 잘 가라, 사랑하는 친구야! 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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